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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

대리청정, 임금의 정치를 대신 수행한 조선의 왕세자 대리청정, 임금의 정치를 대신 수행한 조선의 왕세자 대리청정(代理聽政)은 조선 시대에 임금의 재가(허락)를 받아 임금의 정치 등 여러 일을 대신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섭정). 보통 대리청정은 왕세자 및 왕세손이 하였으며, 가끔 왕세제가 할 때도 있었다. 대리청정할 때의 왕세자 및 왕세손, 왕세제를 소조(小朝)라 했고, 그 당시의 국왕을 대조(大朝)라 부른다. 조선 왕조의 대리청정 태종 : 부왕 태조 때 왕자의 난을 일으키고는 반발을 무마하는 시간을 벌고 왕위 찬탈의 오명을 피하기 위해 형 정종을 세자 책 봉되게끔 했다가 다시 실권 없는 보위에 올려 정종 대신에 왕세제가 아닌 왕세자로서 1398년부터 1400년까지 대리청정하였다. 당시 맏형이자 태조의 적장자였던 진안대군이 개국한지 불과 1년 후에 훙서한.. 더보기
정묘호란, 서인의 친명정책과 후금 태종의 주전정책이 충돌하다. 정묘호란, 서인의 친명정책과 후금 태종의 주전정책이 충돌하다. 정묘호란(丁卯胡亂)은 조선 1627년(인조 5년)에 후금이 침입해 일어난 전쟁이다. 인조 즉위 후 집권한 서인의 친명(親明) 정책과 후금 태종의 조선에 대한 주전(主戰) 정책의 충돌에 기인한 싸움이며, 이로 말미암아 후금은 명나라와는 불가능하였던 교역의 타개책을 조선에서 얻게 되었다. 배경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은 내정과 외교에 그의 비범한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여 임진왜란 뒤의 사고 정비, 서적 간행, 호패의 실시 등으로 눈부신 치적을 올렸다. 밖으로는 1618년 여진족 누르하치가 세운 후금이 만주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국제 정세에 대처하여 현명한 외교 정책을 써서 국제적인 전란에 빠져 들어가는 것을 피하려 노력하였다. 1619년 명나라가 후.. 더보기
계축옥사, 남인세력이 몰락하고 대북이 정권을 장악하다. 계축옥사, 남인세력이 몰락하고 대북이 정권을 장악하다. 1608년 광해군(光海君)이 즉위하자, 대북은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옹립하여 역모하였다는 이유로 소북의 영수(領首) 류영경 (柳永慶)을 죽이고 소북 인사들을 축출하였다. 그리고 대북은 또 왕권에 계속 위협이 되는 영창대군과 그 측근들을 제거하고자 하였는데 때마침 그 계획을 이룰 수 있게 된 사건이 계축옥사(癸丑獄事)이다. 1613년 박응서(朴應犀)·서양갑(徐羊甲)·심우영(沈友英) 등이 조령(鳥嶺)에서 은(銀) 상인을 죽이고 은 수백 냥을 강탈한 사건 이 일어났다. 그 범인 일당은 모두 서얼(庶孼) 출신들로, 자신들을 강변칠우(江邊七友)라 일컫는 무리였다. 그자들은 적서 차별을 폐지해 달라는 자신들의 상소가 거부당하자 불만을 품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 더보기
계축일기, 조선시대의 궁중수필 계축일기, 조선시대의 궁중수필 계축일기는 조선 제14대 왕 선조의 계비(繼妃)인 인목왕후(仁穆王后)를 모시던 나인으로 추정되는 이가 지은 조선시대의 궁 중수필이다. 인목왕후또는 그녀의 딸인정명공주(貞明公主) 가 지었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광해군의 정치중 인목왕후 유폐와 영창대군 살해만 다루었을 뿐, 중립외교, 전란극복 등 업적들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광해군이나 북인에 대한 적대세력이 쓴 소설일 가능성도 있다. 《한중록》 《인현왕후전》과 함께 3대 궁중문학의 하나로 《서궁록(西宮錄)》이라고도 한다. 광해군과 영창대군과의 왕위 계승을 위한 싸움 및 영창대군 처형 사건을 중심으로, 인목왕후의 심정을 상세하고 실감있는 필 치로 그려냈다. 궁중문학으로 소설문학의 발달에 기여했으며, 궁중비사를 그려 일반 백성과.. 더보기
인목왕후, 광해군이 폐위되자 복호되어 대왕대비가 되다. 인목왕후, 광해군이 폐위되자 복호되어 대왕대비가 되다. 인목왕후 김씨(仁穆王后 金氏, 1584년 12월 15일/음력 11월 14일 ~ 1632년 8월 13일/음력 6월 28일)는 조선 선조(宣祖)의 계비 이다. 흔히 인목대비(仁穆大妃)로 불리나, '인목(仁穆)'은 죽은 뒤에 받은 시호(諡號)이기 때문에 이는 잘못된 호칭이다. 선조 때 '소성(昭聖)'이라는 존호를, 광해군 때 '정의(貞懿)'라는 존호를 받아 통칭 소성대비(昭聖大妃)라 불렸다. 인조가 반정으로 즉위한 뒤 대왕대비가 되어 '명렬(明烈)'이라는 존호가 더해졌고, 죽은 뒤 '광숙장정(光淑莊定)'이라는 휘호 와 '인목'이라는 시호가 올려졌다. 고종 때에 '정숙(正肅)'이라는 존호가 추가로 더해짐으로써, 정식 시호는 소성정의명렬광숙장정정숙인목왕후(昭.. 더보기
동의보감, 허준, 각 병마다 처방을 풀이하다. 동의보감, 허준, 각 병마다 처방을 풀이하다. 《동의보감》(東醫寶鑑)은 허준 등이 지은 한의학에 대한 임상의학 백과사전으로서, 1596년(선조 29)부터 편찬하여 1610년 (광해 2)에 완성된 의학서이다. 당시 의학을 집대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허준이 직접 간행에 관여하여 나온 동의보감의 어제본은 국립중앙도서관과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소장 중으로, 각각 보물 1085 호와 1085-2호로 지정되었으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대표 편찬자 허준은 유희춘에 의해 조선시대 3품 이상의 고급 관리들에게 관리로서 관원 후보자로 추천된다. 1590년, 광해군의 두창을 치료한 공로로 정3품 통정대부(당상관)의 작위를 받고, 1596년, 광해군의 병을 치료한 공로로 정2품 정헌대부의 작위를 받았다 집.. 더보기
건저문제, 왕세자 책봉을 둘러싸고 동인과 서인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다. 건저문제, 왕세자 책봉을 둘러싸고 동인과 서인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다. 건저 문제(建儲問題)는 1591년(선조 24년) 왕세자 책봉을 둘러싸고 동인과 서인 사이에 일어난 분쟁이며, 건저의 사건(建儲議事件)이라고도 한다. 건저(建儲)는 왕의 자리를 계승할 왕세자를 정하던 일을 뜻한다. 배경과 과정 정여립 사건을 가혹하게 진압하여 서인의 영수 정철은 좌의정에 오르게 된다. 이에 동인은 원한을 품고 복수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선조의 총애를 받던 인빈 김씨가 신성군(信城君, 1578년~1592년 11월 5일)을 낳자 신성군은 선조의 총애를 받게 되었다. 당시 동인의 영수 영의정 이산해(李山海)가 인빈의 오빠 김공량(金公諒)과 친교하고 있었다. 이산해는 우의정이던 유성룡, 정철과 함께 세자 책봉을 논의한다. .. 더보기
이원익, 오리정승, 청렴하여 청백리에 녹선되다. 대동법에 적극 찬성하다. 이원익, 오리정승, 청렴하여 청백리에 녹선되다. 대동법에 적극 찬성하다. 이원익(李元翼, 1547년 ~ 1634년)은 조선시대 중기, 후기의 왕족 출신 문신, 학자, 정치인이다. 음서로 관직이 승의랑(承議郞)에 이르러 다시 1569년(선조 2년) 문과에 급제하여 대 사헌과 호조·예조·이조 판서, 의정부좌의 정 등을 지내고 관직이 의정부영의정에 이르렀으며, 임진왜란 때 의주로 몽양가는 선조를 호종하여 호성공신(扈聖功臣)에 녹 훈되었으며, 완평부원군(完平府院君)에 봉작되었다. 사후 근검절약, 청렴하여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되었다. 당색으로는 동인(東人)이었으나 정여립의 옥사를 계기로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분당될 때 그는 남인이 되었다. 광해군 때 인목대비 폐모론에 반대하였고, 인조 반정 이후에도 영의정에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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