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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귀인조씨, 조선 인조의 후궁, 성품이 매우 응큼하고 간사하다. 귀인조씨, 조선 인조의 후궁, 성품이 매우 응큼하고 간사하다. 귀인 조씨(貴人 趙氏, ? ~ 1652년 1월 24일 (1651년 음력 12월 14일))는 조선의 제16대 왕 조선 인조의 총관후궁이다. 조기(趙琦)의 딸로 어머니는 한옥(漢玉)이다. 1630년 김두남(金斗南)의 첩의 딸과 여시(女侍)로서 뽑혔는데, 예선(禮選)한 것이 아니고 부정한 인연으로 입궁한 것이라 하여 행 부호군 이명준(李命俊)의 탄핵을 받았다. 이때 외간에 전파된 말에 따르면 조기의 딸이 임금에게 가장 총애를 받았는데 그녀는 정백창(鄭百昌)이 진납한 사람임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정백창은 인렬왕후의 형부로서 조씨의 입궁은 인렬왕후의 뜻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 후궁 시절 원래 숙원(淑媛)이었다가 1638년(인조 1.. 더보기
정묘호란, 서인의 친명정책과 후금 태종의 주전정책이 충돌하다. 정묘호란, 서인의 친명정책과 후금 태종의 주전정책이 충돌하다. 정묘호란(丁卯胡亂)은 조선 1627년(인조 5년)에 후금이 침입해 일어난 전쟁이다. 인조 즉위 후 집권한 서인의 친명(親明) 정책과 후금 태종의 조선에 대한 주전(主戰) 정책의 충돌에 기인한 싸움이며, 이로 말미암아 후금은 명나라와는 불가능하였던 교역의 타개책을 조선에서 얻게 되었다. 배경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은 내정과 외교에 그의 비범한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여 임진왜란 뒤의 사고 정비, 서적 간행, 호패의 실시 등으로 눈부신 치적을 올렸다. 밖으로는 1618년 여진족 누르하치가 세운 후금이 만주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국제 정세에 대처하여 현명한 외교 정책을 써서 국제적인 전란에 빠져 들어가는 것을 피하려 노력하였다. 1619년 명나라가 후.. 더보기
건저문제, 왕세자 책봉을 둘러싸고 동인과 서인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다. 건저문제, 왕세자 책봉을 둘러싸고 동인과 서인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다. 건저 문제(建儲問題)는 1591년(선조 24년) 왕세자 책봉을 둘러싸고 동인과 서인 사이에 일어난 분쟁이며, 건저의 사건(建儲議事件)이라고도 한다. 건저(建儲)는 왕의 자리를 계승할 왕세자를 정하던 일을 뜻한다. 배경과 과정 정여립 사건을 가혹하게 진압하여 서인의 영수 정철은 좌의정에 오르게 된다. 이에 동인은 원한을 품고 복수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선조의 총애를 받던 인빈 김씨가 신성군(信城君, 1578년~1592년 11월 5일)을 낳자 신성군은 선조의 총애를 받게 되었다. 당시 동인의 영수 영의정 이산해(李山海)가 인빈의 오빠 김공량(金公諒)과 친교하고 있었다. 이산해는 우의정이던 유성룡, 정철과 함께 세자 책봉을 논의한다. .. 더보기
이괄의 난, 왕을 도성으로부터 피난시킨 전무후무한 난이다. 이괄의 난, 왕을 도성으로부터 피난시킨 전무후무한 난이다. 이괄의 난(李适—亂)은 1624년(인조 2년)에 일어난 반란이다. 인조반정의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이괄은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무고를 당하자 난을 일으켜 한양까지 함락시켰다. 조선대의 내부 반란으로서는 처음으로 왕을 도성으로부터 피난시킨 전무후무한 난이기도 하다. 이후 길마재 전투에서 패배하여 진압되었다. 배경 이괄은 1622년(광해군 14년) 함경도 병마절도사에 임명되어 임지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친분이 있던 신경유의 권유로 광 해군을 축출하고 새 왕을 추대하는 계획에 가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623년 음력 3월에 서인의 주도로 일어난 인조반정에서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즉위시키는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이괄은 2등 공신에 책록.. 더보기
정명공주, 선조와 인목왕후의 딸, 영창대군의 누나 정명공주, 선조와 인목왕후의 딸, 영창대군의 누나 정명공주(貞明公主, 1603년 6월 27일(음력 5월 19일) ~ 1685년 9월 8일(음력 8월 10일))는 조선 후기의 왕족으로, 선조와 인목왕후의 딸이며 영창대군의 누나이다. 광해군 때 폐서인되어 어머니와 함께 감금되는 등 고초를 겪었으나 인조반정 후 공주로 복권되고 중추부동지사 홍영의 아들 홍주원과 결혼했다. 사도세자의 비 혜경궁 홍씨, 홍봉한, 홍인한, 홍국영, 원빈 홍씨 등은 모두 그의 후손들이었다. 유년기 1603년 6월 27일(음력 5월 19일) 선조와 인목왕후 김씨 사이에서 선조의 21번째 자식이자 10번째 딸로 태어났으며, 선조에게는 유일한 적녀이다. 선조는 52세의 나이에 본 늦둥이 딸 정명공주를 무척 귀여워했으나 이복오빠 광해군이 즉.. 더보기
김개시, 민첩하고 꾀가 많아 선조와 광해군의 총애를 받다. 김개시, 민첩하고 꾀가 많아 선조와 광해군의 총애를 받다. 상궁 김씨(생년 미상 ~ 1623년)는 광해군 때의 상궁이다. 본명은 김개시(金介屎). 원래 처소나인이었는데 선조의 눈에 들었고, 결국 선조의 승은을 입었다. 일화 선조의 계비인 인목왕후와 대립관계였는데 인목왕후가 영창대군을 회임하였을 때 도깨비 소동으로 유산을 시키려 하였고, 궁 안에 선조가 독살당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그녀가 선조의 약밥에 독을 타 독살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고 한다. 생애 그녀의 출신은 알수 없지만, 야사(野史)에 따르면 1600년 전후에 궁에 궁녀로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세자(世子)인 광해군을 만났고, 광해군을 모시는 궁녀가 된다. 광해군의 아버지인 선조의 눈에 띄어 승은을 받아 특별상궁으로 되었고, 미모는 아니나 민.. 더보기
소현세자의 부인, 민회빈 강씨,인조에 의해 법살당하다. 소현세자의 부인, 민회빈 강씨,인조에 의해 법살당하다. 민회빈 강씨(한자: 愍懷嬪 姜氏, 1611년 ~ 1646년 4월 30일/음력 3월 15일)는 조선 소현세자의 부인이다. 병자호란으로 남편 소현세자와 함께 도르곤에 의해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다가 귀환했다. 민회빈이 억울하게 죽었다는 상소를 처음 올린 김홍욱은 국문을 받던 중 장살되었는데, 이는 민회빈의 무죄가 알려지는 것을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이다. 인조에 의해 법살당했으나 당대에도 신독재 김집, 송시열, 김홍욱, 송준길 등은 그녀가 억울하게 죽었다고 주장하였다. 그 뒤 여러 번 억울함을 신원하는 상소가 올려졌으나 거절되었고, 숙종 때 송시열이 다시 그녀의 억울함을 주장하여 신원을 청 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 뒤 숙종 때 송시열, 김수항 등의 신원 상.. 더보기
삼배구고두례, 중국 청나라 시대에 황제에게 머리를 조아려 절하는 예법 건륭제를 알현하는 매카트니 삼배구고두례, 중국 청나라 시대에 황제에게 머리를 조아려 절하는 예법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 또는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는 중국 청나라 시대에 황제나 대신을 만났을 때 머리를 조 아려 절하는 예법이다. 고두례는 본래 신불이나 직계 존친속에게 존경을 표시하기 위하여 행하던 것이다. 명나라 시대에 이르러서 황제에 대한 일종의 의식으로 발전하였다. 당시에 오배삼고지례(五拜三叩之禮)가 행해졌으며, 번속국의 조공사가 수도에 도착하여 황제를 알현할 때 이 의식이 행해졌다. 청나라가 입관하여 중국을 통치하기 시작한 이후에 명나라 시대의 오배삼고례는 삼궤구고두례로 대체되었다. 신해혁명 이후에 삼궤구고두례는 폐지되어 허리만 가볍게 굽히는 국궁(鞠躬)으로 대체되었다. 방식 삼궤구고두례를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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