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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화론

김상헌,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주전론을 펴고, 최명길이 작성한 항복문서를 찢고 통곡하다. 김상헌,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주전론을 펴고, 최명길이 작성한 항복문서를 찢고 통곡하다. 김상헌(金尙憲, 1570년 ~ 1652년)은 조선 중·후기의 문신, 학자이다. 병자, 정묘호란시 척화대신으로 이름이 높았다. 본관은 (신) 안동, 자는 숙도(叔度), 호는 청음(淸陰)·석실산인(石室山人)·서간노인(西磵老人)이며,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윤근수(尹根壽)의 문인. 조선후기 세도가의 직계선조로 그의 후손에서 13명의 재상과 수십 명의 판서, 참판이 배출되었고, 순조비, 헌종비, 철종비 등 왕비 3명과, 숙종의 후궁 영빈 김씨가 모두 그의 후손이었다. 생애 초반 3세 때 큰아버지인 김대효에게 출계(出系)하였다. 윤근수(尹根壽)의 문하에서 수업하고, 《소학(小學)》 공부에 힘썼으며 성혼의 도학에 연원을 두었다.. 더보기
최명길,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와의 화의론을 주장하여 주전론을 주장하던 청음 김상헌과 맞서다. 최명길,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와의 화의론을 주장하여 주전론을 주장하던 청음 김상헌과 맞서다. 최명길(崔鳴吉, 1586년 ~ 1647년 6월 19일(음력 5월 17일))은 조선 중기의 문신, 성리학자, 양명학자, 외교관, 정치가이다. 본관은 전주, 자는 자겸(子謙), 호는 지천(遲川)·창랑(滄浪)이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완성군에 봉작되었다가 완성부원군으로 진봉되었다. 1605년 생원시에 입격한후 그해의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올랐으며 젊은 나이에 요직을 두루 거쳤다. 1614년 병조좌랑에서 삭직된 뒤 복권되었으나 1617년 인목대비 폐모론에 반대하여 관직을 사퇴했다. 광해군의 정치에 반발하여 그 뒤 1623년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 1등으로 완성군(完城君)에 봉군되었다. .. 더보기
병자호란, 동아시아 역사에서 명청교체기를 상징하는 중요한 사건이다.(1) 병자호란, 동아시아 역사에서 명청교체기를 상징하는 중요한 사건이다.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년 병자년 12월부터 1637년 1월까지 조과 청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청의 홍타이지가 명을 공격하기 이전에 배후의 안전을 확보할 목적으로 조선을 침공하였고, 인조와 조정이 남한산성에서 항전하였으나 청의 포위로 인한 굶주림과 추위, 왕실이 피난한 강화도의 함락, 남한산성의 포위를 풀기 위한 근왕병의 작전 실패 등으로 말미암아 항복하였다. 동아시아 역사에서는 명청교체기를 상징하는 중요한 사건이며, 조선으로서는 짧은 전쟁 기간에도 불구하고 전쟁 포로로 수십 만의 백성이 청으로 끌려가 그 사회적 피해가 유례없이 막심하였다. 개요 조선은 정묘호란 이후 후금과 형제의 관계를 맺었으나, 강화조약에 따라 명과의 관계에는..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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