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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금천교, 진선문, 인정전, 인정문 주변의 궐내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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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금천교

 

 

 

금천교는 1411(태종11)에 만들어진 돌다리입니다. 조선의 궁궐에는 들어가는 입구에 풍수지리상 길한 명당수를 흐르게 하고 궁궐 안과 밖을 구분하기 위해 돌다리를 놓습니다. 경복궁에는 영제교가 있고 창덕궁에는 금천교가 있습니다. 다리 아래에는 남쪽의 해태상, 북쪽에는 거북상을 배치하여 궁궐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삼았어요. 다리 중간에는 잡귀를 쫓는 귀면이 조각되어 있고 돌출부에는 천록이 있어 들어오는 사람의 마음을 착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진선문

 

 

 

진선문은 남북축의 돈화문이나 인정문과 다르게 동서축으로 세워져 있어 돈화문에서 북쪽을 가다가 동쪽으로 꺽어서 금천교와 진선문을 지나 다시 북쪽으로여 인정문에 들어가게 됩니다. 태종대와 영조대에 진선문에 북을 설치하여 억울한 일이 있는 백성이 와서 치면 직접 해결해 준다는 신문고 혹은 등문고가 있었다고 해요. 하지만 실제로 치는 사람은 없었다고 합니다.

 

 

인정문

 

 

 

인정문은 인정전의 정문으로 1405년에 지어졌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지고 광해군 즉위년에 재건했는데 그 이후로 두 번이나 불에 탔습니다.

순조 때 복원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1912년 인정전을  전시장으로 만들어 일본식으로 변형되었던 것을 1988다시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해 놓았습니다. 인정전의 정문으로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경복궁을 대신해 오랫동안 법궁 역할을 하며 즉위식이 거행되기도 하였습니다.

 

 

인정문 주변의 궐내각사

 

 

 

정청

정청은 인사업무를 주로 담당하던 곳입니다. 문관의 인사는 이조에서 무관의 인사는 병조에서 맡아했습니다.

 

 

 

 

 

호위청

호위청은 인조반정 이후 집권한 서인들이 국왕의 호위를 명목으로 자신들의 군사 세력 기반을 유지하기 위한 창설한 부대입니다. 호위청에는 대장 1명 별장 3명이 근무했고 군관 350명을 거느렸다고 합니다.

 

 

 

 

 

상서원

왕의 명령은 왕의 옥새가 찍힌 '교지' 또는 '교서' 를 통해 내려집니다. 옥새와 각종 서류를 관리하는 곳이 상서원입니다. 임금을 상징하는 도끼를 절월이라하고 군대를 동원하는 표지로 쓰던 나무패를 병부라 합니다. 궁궐이나 도성을 순찰 할 때 차고 다니던 패는 순패하고 해요. 이렇게 왕의 명령을 상징하는 여러 물건을 관리하는 관청이에요. 개국 당시 상서사란 이름에서 세조 12년에 상서원으로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내병조

대궐 안에 있는 병조입니다. 조선시대 각 궁궐 내에 설치하였던 병조에 딸린 관청이에요. 군사업무를 보기 위한 병조 관리들의 출장소와도 같은 구실을 했습니다. 대궐안의 시위 병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한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다음은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과 편전인 선정전, 긴급한 회의를 했던 빈청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출처 : 궁궐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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