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홍립, 광해군 때 조명연합군을 구성하여 요동에 파견되다.
강홍립, 광해군 때 조명연합군을 구성하여 요동에 파견되다. 강홍립(姜弘立, 1560년 ~ 1627년)은 조선의 문관, 군인이다. 광해군 때 명나라에 지원병을 이끌고 참전했으나 청나라와의 교전을 피하다가 투항했다. 자 군신(君信), 호 내촌(耐村),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생애 초기 1597년(선조 30년) 문과 알성시에 병과1등위로 급제하였고,설서,검열을 역임하고 1599년 함경도 도사, 1601년 성균관 전적, 공조정랑, 1602년 장령, 수찬 1604년 교리, 부수찬, 사예, 1605년(선조 38년) 도원수 한준겸(韓浚謙)의 종사관이 되었고, 같은 해 주청사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갔다. 1606년 예조정랑, 부교리, 1607년 성균관 직강, 내자시정, 수찬을 지냈다. 관료 생활 광해군 원년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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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헌,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주전론을 펴고, 최명길이 작성한 항복문서를 찢고 통곡하다.
김상헌,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주전론을 펴고, 최명길이 작성한 항복문서를 찢고 통곡하다. 김상헌(金尙憲, 1570년 ~ 1652년)은 조선 중·후기의 문신, 학자이다. 병자, 정묘호란시 척화대신으로 이름이 높았다. 본관은 (신) 안동, 자는 숙도(叔度), 호는 청음(淸陰)·석실산인(石室山人)·서간노인(西磵老人)이며,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윤근수(尹根壽)의 문인. 조선후기 세도가의 직계선조로 그의 후손에서 13명의 재상과 수십 명의 판서, 참판이 배출되었고, 순조비, 헌종비, 철종비 등 왕비 3명과, 숙종의 후궁 영빈 김씨가 모두 그의 후손이었다. 생애 초반 3세 때 큰아버지인 김대효에게 출계(出系)하였다. 윤근수(尹根壽)의 문하에서 수업하고, 《소학(小學)》 공부에 힘썼으며 성혼의 도학에 연원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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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길,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와의 화의론을 주장하여 주전론을 주장하던 청음 김상헌과 맞서다.
최명길,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와의 화의론을 주장하여 주전론을 주장하던 청음 김상헌과 맞서다. 최명길(崔鳴吉, 1586년 ~ 1647년 6월 19일(음력 5월 17일))은 조선 중기의 문신, 성리학자, 양명학자, 외교관, 정치가이다. 본관은 전주, 자는 자겸(子謙), 호는 지천(遲川)·창랑(滄浪)이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완성군에 봉작되었다가 완성부원군으로 진봉되었다. 1605년 생원시에 입격한후 그해의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올랐으며 젊은 나이에 요직을 두루 거쳤다. 1614년 병조좌랑에서 삭직된 뒤 복권되었으나 1617년 인목대비 폐모론에 반대하여 관직을 사퇴했다. 광해군의 정치에 반발하여 그 뒤 1623년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 1등으로 완성군(完城君)에 봉군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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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 인조의 능,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으로 파천하다.
장릉 인조의 능,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으로 파천하다. 위치 : 경기 파주시 탄현면 장릉로 90 능의 형식 : 합장릉 능의 조성 : 1636년(인조 14), 1649년(효종즉위), 1731년(영조 7) 능의 구성 장릉은 조선 16대 인조와 첫 번째 왕비 인열왕후 한씨의 능으로 합장릉의 형식이다. 장릉은 원래 파주 운천리에 있었다가 1731년(영조 7)에 현재의 자리로 천장하면서 합장릉으로 조성하였다. 특히 옛 장릉의 석물과 천장하면서 다시 세운 석물이 같이 있어 17세기와 18세기의 왕릉 석물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진입 및 제향공간에는 재실, 금천교, 홍살문, 향로와 어로, 수복방, 정자각, 비각이 배치되어 있다. 향로와 어로는 숙종의 명릉처럼 양 옆에 변로를 깔았다. 능침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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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 영창대군 살해와 인목대비 폐위로 반정의 명분을 제공하다.
광해군, 영창대군 살해와 인목대비 폐위로 반정의 명분을 제공하다. 민생과 문화 임금이 된 광해군은 즉위 초부터 안으로는 왕권을 강화하면서 전후 복구 사업을 시행하였으며, 밖으로는 실리적인 외교를 펼쳤다. 1608년 선혜청을 두어 경기도에 대동법을 시행하고, 1611년 양전 사업을 벌였다. 이어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된 창덕궁, 경희궁, 창경궁을 재건하고 인경궁을 건설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된 서적 간행에도 힘써 《신증동국여지승람》, 《용비어천가》 ,《동국신속삼강행실》 등을 다시 간행했다. 허균의 《홍길동전》, 허준의 《동의보감》 등도 이 시기에 완성되었다. 군사와 외교 광해군은 파주 교하가 군사적으로 방어에 유용할 뿐 아니라 중국 대륙과의 해상 교역이 가능해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기에 적당한 곳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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