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 연산군의 묘, 거창군 부인 이야기
정릉 연산군의 묘, 거창군 부인 이야기 위치 :서울 도봉구 방학로 17길 46 묘의 형식 :쌍분 묘의 조성 :1454년(단종 2), 1512년(중종 7), 1537년(중종 32) 묘의 구성 연산군묘는 조선 10대 연산군과 거창군부인 신씨의 묘소이다. 묘소는 대군묘제로 조성하였다. 쌍분의 형태로 조성되어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고, 문석인 2쌍, 망주석, 장명등, 상석, 향로석을 배치하였다.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이 연산군묘, 오른쪽이 거창군부인묘소로 각 봉분 앞에는 묘표석을 세웠다. 묘소 밑에는 재실이 있다. 같은 묘역 안에는 태종의 후궁 의정궁주 조씨의 묘소, 연산군의 딸(휘순공주)와 사위(능양위 구문경)의 쌍분이 조성되어 있다. 묘의 역사 1506년(중종 1)에 연산군이 유배지 강화 교동에서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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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광,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정국공신이 되다.
유자광,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정국공신이 되다. 류자광(柳子光, 1439년 ~ 1512년 6월)은 조선의 초기의 무신, 군인, 교육자, 유학자, 작가이다. 본관은 영광(靈光), 자(字)는 우복(于復), 우천(宇天)이다. 1467년 이시애의 난의 토벌에 참여하여 공신이 되었다. 이후 이시애의 난, 남이의 옥 등으로 익대공신에 책록되었고 1506년에는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정국공신이 되었다. 서얼(庶孼) 출신으로서 무사가 되었다가 이시애의 난의 진압 때 세운 공로로 세조의 총애를 얻어 1468년(세조 13년) 병조정랑으로 온양별시문과(溫陽別試文科)에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며, 관직은 병조판서, 판한성부사, 황해도와 경상도의 관찰사 등을 지냈다. 그 뒤 의정부 좌찬성 등을 거쳐 대광보국숭록대부 행의정부좌찬성, 겸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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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극돈, 무오사화의 원인 제공자, 유자광에게 조의제문 실린 사실을 알려주다.
이극돈, 무오사화의 원인 제공자, 유자광에게 조의제문 실린 사실을 알려주다. 이극돈(李克墩, 1435년 ∼ 1503년 2월 27일)은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 정치인, 학자, 외교관이다. 우의정 이인손(李仁孫)의 아들이자 영의정을 지낸 이극배의 동생이다. 무오사화의 원인 제공자로 유자광에 의해 지목되어 사림파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1910년 대한제국 멸망 이후 복권 여론이 나타났다. 성종의 즉위를 도운 공로로 순성좌리공신(純誠佐理功臣) 4등관에 녹선되고, 광원군(廣原君)에 봉군되었다. 자(字)는 사고(士高)이고 호는 사봉(四峯)이며 시호는 익평(翼平), 본관은 광주(廣州)이다. 그의 부친 이인손과 형 이극배, 동생이극균 3부자가 정승을 지내고 나머지 형제들도 판서를 지냄으로써 형제가 모두 작위를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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