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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세조찬위, 조선 최초의 반정으로 중종 반정과 인조 반정, 이괄의 난, 경종 독살 미수 사건 등에 영향을 미치다. 세조찬위, 조선 최초의 반정으로 중종 반정과 인조 반정, 이괄의 난, 경종 독살 미수 사건 등에 영향을 미치다. 세조찬위(世祖簒位) 또는 세조반정(世祖反正)은 조선의 첫 번째 반정으로 1455년(단종 3)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빼앗은 일이다. 1455년(단종 3) 한명회, 권람, 신숙주 등이 김종서 일파와 안평대군을 제거하고 단종을 폐위시킨 뒤 왕숙인 수양대군(세조)을 왕으로 추대하였다. 관점에 따라서 단종 폐위 사건으로 부르기도 한다. 배경 세종과 문종의 사후 어린 단종을 대신하여 관료들과 외척들이 발호하였고,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왕숙 수양대군, 안평대군 등이 두각을 드러냈으며, 계유정난을 빌미로 반정의 명분을 삼았다. 단종이 즉위하였을 때는 나이 겨우 12세에 불과하여, 부왕이자 선왕인.. 더보기
경혜공주, 단종의 친누이, 남편 정종의 죄에 연좌되어 순천의 관비가 되다. 경혜공주, 단종의 친누이, 남편 정종의 죄에 연좌되어 순천의 관비가 되다. 경혜공주(敬惠公主, 1436년 ~ 1473년 음력 12월 30일)는 문종과 현덕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단종의 친누이이기도 하다. 생애 경혜공주가 태어났을 당시 아버지 문종은 즉위 전이었고, 어머니 권씨는 세자의 후궁으로 품계는 종3품 양원(良媛)이었기 때문에 '현주'로 불리게 되었다. 위로 언니가 있었으나 태어난 지 1년도 못 되어 1433년에 죽었다. 어머니 양원 권씨가 세자빈으로 승격되면서 경혜공주는 현주에서 군주로 승격되고, 세자빈의 거처인 자선당에서 살게 되었다. 경혜공주는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당시의 관습대로 재액을 피하기 위해 조유례의 집에서 그 부인 및 외가의 여종인 유모 백씨의 손에 컸다. 그녀는 미모가 굉장.. 더보기
월산대군, 덕종, 경복궁 자선당에서 요절하다. 월산대군, 덕종, 경복궁 자선당에서 요절하다. 덕종(德宗, 1438년 ~ 1457년 9월 20일 (음력 9월 2일)은 조선 초기의 왕족이자 왕세자(王世子), 작가이다. 세종의 첫 손자이자 세조의 장자이며 예종의 형이다. 월산대군, 성종 형제의 아버지이다. 어머니는 정희왕후 윤씨이다. 1455년 세자(世子)에 책봉되었으나 2년 만에 20세의 나이에 요절한다. 사후 차자 성종이 즉위하면서 왕(王)으로 추존되었다. 바로 의경왕(懿敬王)에 추존되었다가 회간왕(懷簡王)으로 추존되고 뒤에 덕종(德宗)의 묘호가 올려졌다. 정식 시호는 덕종회간선숙공현온문의경대왕(德宗懷簡宣肅恭顯溫文懿敬大王)이며 왕에 추존되기 전에는 의경세자(懿敬世子)로 불렸다. 성은 이(李), 휘는 장(暲), 초명은 숭(崇), 현동(賢同), 자는 원명.. 더보기
이시애의 난, 단종 폐위를 반역으로 규정하고 거사를 모의하다. 이시애의 난, 단종 폐위를 반역으로 규정하고 거사를 모의하다. 이시애의 난(李施愛-亂)은 1467년(세조 13년) 5월부터 8월까지 함경도 길주의 호족 이시애 등이 세조의 집권 정책에 반대해 일으킨 반란이다. 당시 이시애는 길주 출신의 호족 토반으로 1458년 경흥진병마절제사, 1461년 행지중추부사를 역임하고, 1463년 회령부사로 있다가 어머니의 상을 당해 관직에서 물러나 있었다. 함길도는 이성계의 고향으로 조선왕조의 주요 연고지 중의 하나였으며, 지리적으로 북방 이민족과 접해 있는 특수 사정을 고려해 지방관은 인망 있는 호족 중에서 임명해 대대로 다스리게 하였다. 그러나 함경도인에 대한 지역차별과 외지에서 부임한 관리들에 대한 반발로 함경도내 유향소 세력을 규합, 1467년 5월 이시애 등은 함경도.. 더보기
현덕왕후, 원손(단종)을 낳자마자 하루만에 사망하다. 현덕왕후, 원손(단종)을 낳자마자 하루만에 사망하다. 현덕왕후 권씨(顯德王后 權氏, 1418년 4월 17일 (음력 3월 12일) ~ 1441년 8월 10일 (음력 7월 24일))는 조선 문종의 왕비이다. 시호는 인효순혜현덕왕후(仁孝順惠顯德王后)이다. 화산부원군 권전(花山府院君 權專)과 해령부부인 최씨(海寧府夫人 崔氏)의 딸로,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문종의 세자 시절 휘빈 김씨(1429년 7월 18일 폐출)와 순빈 봉씨(1436년 10월 26일 폐출) 이후 세 번째로 맞은 세자빈으로, 1441년 단종을 낳고 하루 만에 산후병으로 사망한다. 남편 문종이 즉위한 후 왕후에 추존되었다. 생애 원래 왕세자 향(문종)의 후궁인 승휘로 궁에 들어갔으며, 세자의 두 부인인 휘빈 김씨와 순빈 봉씨가 갖가지 비행으로 .. 더보기
영조, 세손 정조에게 대리청정을 시킨 이유 영조, 세손 정조에게 대리청정을 시킨 이유 탕평책 실패 노론과 소론의 대립 구도는 끝내 1762년 자신의 아들인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사도세자는 경종비 선의왕후가 만년을 보내던 저승전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이들을 통해 경종독살설을 접하고 노론에게 반감을 갖게 된다. 영조의 원비이자 사도세자를 양자로 입양한 정성왕후 서씨가 죽고 맞이한 김한구의 딸 정순왕후 김씨와 후궁 숙의 문씨 역시 사람을 심어 사도세자의 행적을 영조에게 고해바치며 양자 사이를 이간질했다. 김상로, 홍계희, 김한구 등은 세자가 그릇된 정치관을 갖고 있다고 영조에게 고하였고, 영조에게 경종 독살설의 진실을 묻게 된다. 또한 세자는 대리청정 기간 중 이인좌의 난 이후 꾸준히 요구된 소론계 인사들에 대한 연좌제, 처벌을 반대하고 소론.. 더보기
금성대군, 단종복위운동을 주도하다 사형 집행되다. 금성대군, 단종복위운동을 주도하다 사형 집행되다. 금성대군 이유(錦城大君 李瑜, 1426년 5월 5일/음력 3월 28일~1457년 11월 7일/음력 10월 21일)는 조선 전기의 왕족이다.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여섯째 아들이다. 1436년 6월에는 세종의 명으로 태조의 8남 의안대군 방석의 봉사손으로 입양되었으며, 단종 폐위 이후 순흥부사 이보흠 등과 함께 단종복위운동을 주도하다가 관노의 밀고로 배소에서 사형 집행되었다. 사후 숙종 때 복관되고, 어정배식록(御定配食錄)에 추배되었다. 휘는 유(瑜), 본관은 전주(全州), 시호는 정민(貞愍)이다. 육종영의 한 사람이다. 생애 초반 1426년(세종 8년) 음력 3월 28일 세종과 소헌왕후의 여섯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양육은 태종의 후궁인 의빈 권씨가 맡았다.. 더보기
신숙주, 사후 그의 검소함과 겸손함이 묻혀지게 되다. 신숙주, 사후 그의 검소함과 겸손함이 묻혀지게 되다. 남이의 옥사 전후 1468년 세조는 죽음을 앞두고 '당 태종에게는 위징, 나에게는 숙주'라고 말했다고 한다. 세조가 신숙주를 당 태종의 위징에 비견한 것은 자신도 당 태종처럼 신숙주를 통해 문화 통치를 이루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한편으로는 그만큼 신숙주를 신뢰했다는 뜻이 된다. 1468년 세조가 병으로 죽고 예종이 어려서 즉위하자 신숙주는 한명회, 구치관, 정인지 등과 함께 원상(院相)의 한사람으로 승정원에 들어가 정희왕후와 함께 서정(庶政)을 처결하고 혼란을 수습하였으며, 예종 즉위 후 남이의 옥사가 발생하자 그는 유자광 등과 함께 위관으로 참여, 남이 장군과 강순 등을 심문한 뒤 숙청하여, 수충보사병기정난익대공신(輸忠保社炳幾定難翊戴功臣)에 책록되었..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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