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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화랑세기, 김대문 풍월주의 역사를 기록하다. 화랑세기, 김대문 풍월주의 역사를 기록하다. 《화랑세기》(花郞世記)는 김대문에 의해 저술된 신라시대 화랑도의 우두머리인 풍월주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신라 성덕왕의 재위기간 (702년 - 737년) 사이에 쓰였다. 《화랑세기》는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서술할 때까지 남아 있었으나, 이후 소실된 것으로 추정되어 왔다. 필사본 발견 1989년 2월에 남당 박창화가 일본 천황가의 보물창고인 일본 궁내청 서릉부에서 필사했다고 주장하는 《화랑세기》 한문 필사본이 김해에서 발견되었다. 1995년에는 162쪽 분량의 또 다른 필사본(모본‧母本)이 발견되었다. 이 필사본에는 서기 540년부터 681년까지의 풍월주 32명의 전기가 담겨 있다. 필사되었다고 주장되는 《화랑세기》는 유교적 가치관과 사뭇 다른 신라인에 대한 기.. 더보기
헌강왕, 불교와 학문의 장려에 노력하다. 헌강왕, 불교와 학문의 장려에 노력하다. 헌강왕(憲康王, ? ~ 886년, 재위: 875년 ~ 886년)은 신라의 제49대 왕이다. 성은 김(金)씨이고 이름은 정(晸)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아버지는 신라 경문왕이고, 어머니는 문의왕후(文懿王后)이다. 875년부터 886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875년부터 879년까지 숙부 김위홍(金魏弘)이 섭정하였고 879년부터 886년 붕어할 때까지 친정을 하였다. 생애 당나라에 876년 7월에 사자를 보내고 공납을 행했다. 878년 4월에는 당 희종으로부터 〈사시절·개부동의삼사·검교태위·대도독·계림주제군사·신라왕(使侍節・開府儀同三司・検校太尉・大都督・雞林州諸軍事・新羅王)〉에 책봉 되었다. 동년 7월에 사자를 보내려고 했지만, 황소의 난이 일어난 것을 이유로 사자의.. 더보기
고구려 태조왕, 한국의 군주 중 가장 오래 산 군주와 가장 오랫동안(93년) 군림한 군주로 기록되다. 고구려 태조왕, 한국의 군주 중 가장 오래 산 군주와 가장 오랫동안(93년) 군림한 군주로 기록되다. 태조대왕(太祖大王, 47년 ~ 165년)은 고구려의 제6대 국왕(재위 53년 ~ 146년)이다. 성은 고(高), 어릴 적 이름은 어수(於漱), 휘는 궁(宮)이며, 고구려를 강력한 중앙집권국가 수준으로 끌어 올린 왕으로서 그 업적이 나라를 세운 것에 버금간다고 하여 국조왕(國祖王)이라고도 불렸다. 119살에 붕어하여 한국의 군주 중 가장 오래 산 군주와 가장 오랫동안(93년) 군림한 군주로 기록되어 있다. 유리명왕(琉璃明王) 또는 대무신왕의 아들인 고추가(古鄒加) 재사(再思)의 아들로, 어머니인 태후(太后)는 이름은 미상이고 부여 사람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는 차대왕과 신대왕은 그의 이복 동생(서제).. 더보기
마한, 54개국의 지역적 연합체, 백제의 문화 기초가 되다. 마한, 54개국의 지역적 연합체, 백제의 문화 기초가 되다. 마한(馬韓)은 고대 한민족의 54개 부족국가 연맹체이다. 마한은 삼한의 기간(基幹)으로서 가장 넓은 지역에 걸쳐 있었다. 그 범위는 한강 유역(경기도)으로부터 충청·전라에 퍼져 있었으며, 목지(目支)·백제(伯濟) 등 54개국이 지역적 연합체를 이루고 있었다. 후에 부여 등 북방계 유이민을 중심으로 형성된 백제(百濟)국이 마한세력을 통일했다. 개요 마한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한반도에 있던 삼한(三韓) 중 가장 큰 정치 집단으로, 54개 소국의 통칭이다. 마한은 서해에 접하고, 동쪽은 진한(辰韓), 남쪽은 변한(弁韓)에 접해 있었다. 한강 이남 서울남동부를 중심으로 했던 나라 등 54개국의 지역적 연합체를 이루고 있었다. 이 마한의 54개 부족국가는.. 더보기
의자왕, 낙화암과 3천 궁녀, 마지막까지 군대를 보내어 싸우다. 의자왕, 낙화암과 3천 궁녀, 마지막까지 군대를 보내어 싸우다. 의자왕(義慈王, ? ~ 660년, 재위 : 641년 ~ 660년)은 백제의 마지막 국왕(혹은 31대 국왕)이다. 이름은 부여의자(扶餘義慈)며 망국의 군주이기 때문에 시호를 받지 못했다. 태자 시절부터 아우들과 우애가 깊고 사려가 깊어 중국의 사상가 증자에 견주어 해동증자(海東曾子)라 일컬어졌다. 말년의 실정으로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받음으로써 초대 온조왕으로 부터 이어진 백제는 멸망하고 의자왕을 비롯한 왕족들과 수많은 백성들이 낙양으로 끌려갔다. 즉위와 정변설(說) 무왕의 첫째 아들로 태어나 632년(무왕 33년) 정월에 왕태자로 책봉되었다. 641년에 아버지 무왕이 승하하자 그 뒤를 이었고, 당으로부터 주국(柱國) 대방군왕(帶方郡王) 백제.. 더보기
동사강목, 안정복, 고조선 부터 고려가 멸망하게 되는 1392년에 이르기까지 2,514년의 역사를 수록하다. 동사강목, 안정복, 고조선 부터 고려가 멸망하게 되는 1392년에 이르기까지 2,514년의 역사를 수록하다. 《동사강목》(東史綱目)은, 조선의 학자 안정복(安鼎福)이 저술한 강목체(綱目體) · 편년체(編年體) 역사서이다. 중국 남송(南宋) 주자(朱子)의 《강목》(綱目)의 체제를 따라 중국 은(殷) 왕조의 기자(箕子)가 주(周)에서 고조선(古朝鮮)으로 망명한 시점으로 알려진 기원전 1122년(주 무왕 13년, 기묘년)부터 고려(高麗) 34대(마지막) 군주 공양왕(恭讓王)이 이성계(李成桂)에 의해 강제로 양위하고 고려가 멸망하게 되는 1392년(고려 공양왕 4년, 임신년)에 이르기까지의 2,514년에 걸치는 역사를 수록하였다. 전체 17권 34책(각권이 상·하로 분류되어 있다)에 서론과 부록 3권이 덧붙여져.. 더보기
견훤, 백제 부흥운동으로 무진주를 점령하고 후백제의 군주가 되다. 견훤, 백제 부흥운동으로 무진주를 점령하고 후백제의 군주가 되다. 견훤(甄萱, 867년 ~ 936년 9월 27일(음력 9월 9일) 재위:892년?/900년? ~ 935년 음력 3월)은 신라 말기의 장군이자 후백제의 시조이다. 892년부터 935년 음력 3월까지 후백제(後百濟)의 국왕으로 재위한 그는 본래 통일신라(新羅)의 장군이었으나 889년을 전후한 시기부터 백제(百濟) 부흥 운동을 전개하여 892년에 무진주를 점령하였고 900년에 비로소 후백제의 군주가 되었으며 935년 음력 3월에 첫째아들이자 적장자(嫡長子)인 신검(神劍)이 일으킨 정변으로 보위에서 축출되었고 대리 집정을 하던 신검은 같은 해 935년 음력 10월 17일에 비로소 후백제의 제2대 군주로 등극하였으나 이듬해 936년 음력 9월 8일에.. 더보기
장보고, 신라 왕실의 명을 받은 자객 염장에게 살해되다. 장보고, 신라 왕실의 명을 받은 자객 염장에게 살해되다. 장보고(張保皐, 787년 ~ 846년)는 한국 남북국 시대 신라의 무장이자 해상 호족이다. 그의 출생과 계통은 알 수 없으나 《삼국사기》에는 본명을 궁복(弓福) 또는 궁파(弓巴)라고만 적고 있다. 일찍부터 친구 정년(鄭年)과 함께 당의 서주(徐州)로 건너간 그는 그곳에서 승마와 창술에 특출난 재주를 보이며 군인으로서 출사해 무령군중소장(武寧軍中小將)의 직책을 받게 되었다. 흥덕왕 3년(828년) 초에 신라로 돌아온 그는 왕에게 신라인들이 해적들에게 납치되어 노예로 팔리는 참상을 전하며, 완도에 군사 거점을 세워줄 것을 청했다. 마침내 승인을 얻어 1만여 명의 군대를 확보한 그는 완도에 청해진(淸海鎭)을 세우고 대사(大使)가 되었다. 그의 활약으로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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