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소리, 한국어의 표기문자 체계
《훈민정음》(훈민정음, 訓民正音)은 조선 초기 세종대왕이 지은 책의 제목, 그리고 그 책에서
해설하고 있는 뒷날 한글로 불리게 된 한국어의 표기 문자 체계를 말한다.
한글은 1443년(세종25년) 훈민정음 28자를 연구·창제하고 3년 동안 다듬고 실제로
써본 후, 1446년 음력 9월에 이를 반포하면서 조선 세종은 『훈민정음 해례본
(訓民正音 解例本)』을 통하여 문자와 천지인을 바탕으로 하는 음양오행의
관계를 설명하였다.
모음은 음양의 원리를 기본으로 만들어졌다.
기본 모음'ㆍ · ㅡ · ㅣ'를 보면 'ㆍ'는 양(陽)인 하늘(天)을 본 떠 만들고,
'ㅡ'는 음(陰)인 땅(地)을 본 떠 만들었으며 'ㅣ'는 음과 양의 중간자인
인간(人)의 형상을 본 떠 만들었다.
오늘날 남아있는 훈민정음의 판본 가운데 하나인 《훈민정음 해례본》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과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책의 구성
훈민정음의 판본에는 크게 해례본(한문본), 언해본이 있고, 그밖에 예의본이 있다.
실록본이 있는데, 이는 예의본에 속한다. 이 가운데 완전한 책의 형태를 지닌 것은
해례본이다.
훈민정음 해례본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解例本)은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부르며,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어 있다.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내용은 “國之語音異乎中國
(나라말 소리가 중국과 달라)……”로 시작하는 세종의 어제 서문과 본문에 해당하는
〈예의(例義)〉및 〈해례(解例)〉, 그리고 정인지가 쓴 〈서(序)〉로 구성되어 있다.
今正音之作
이제 훈민정음을 만드는 것은
初非智營而力索
처음부터 슬기로 마련하고, 애써서 찾은 것이 아니라
但因其聲音而極其理而已.
다만 그 (원래에 있는)성음(의 원리)을 바탕으로 이치를 다한 것 뿐이다.
理旣不二 則何得不與天地鬼神同其用也.
(음양의) 이치가 이미 둘이 아니니 어찌 천지 자연, (변화를 주관하는) 귀신과그 사용을 같이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正音二十八字 各象其形而制之.
훈민정음 스물 여덟자는 각각 그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
<훈민정음 해례> (訓民正音解例) 〈제자해〉(制字解)
해례본은 1940년 안동에서 발견된 것과 2008년 상주에서 발견된 것 두 부가 존재한다.
안동본은 1940년 무렵 까지 경상북도 안동군 와룡면의 이한걸 가문에 소장되어 있었다.
그의 선조 이천이 여진을 정벌한 공으로 세종이 하사했다고 한다.
표지 2장에 본체 33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로 20센티미터, 세로 32.3센티미터 크기이고,
처음 두 장이 망실되었는데 연산군의 기훼제서율을 피하기 위한것이다.
훗날 이것을 입수한 간송 전형필은 6.25전쟁 때 이 한권을 오동상자에 넣고 피란을 떠났으며,
잘 때도 베게삼아 잤다고 한다.
상주본은 2008년 8월 상주에 사는 배모가 집 수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고 공개했다.
세 장이 떨어져 나간 상태이다.
그러나 골동품상을 하는 조모가 도난당한 것이라며 주장하여 소송이 오갔다.
상주본은 낱장을 비닐에 넣어 보관하고 있는데 이는 서적을 오히려 훼손할 우려가 있어
서적 보호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나 분쟁으로 인하여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민사 소송에서 대법원은 조의 손을 들어줬으며 문화재청에 기증했다.
배 씨는 형사 재판에서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 것이 안동 광흥사에서
복장유물이라는 논란이 제기되어 광흥사가 소속된 조계종이 반발했다.
그러나 2심 법원은 배 씨에게 증거 부족으로 무죄 판결을 내렸다.
2심 과정에서 조가 주장하는 보관 과정과는 배치되고, 배 씨와 일치되는 증거가 나왔다.
재판부는 골동품상 조모씨등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고 직접 본 사람과 다른 점, 절취하였다는
날 직후에 공개된 점이 의심스러운 점을 무죄 선고의 이유로 밝혔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1년 5월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소유권자는 조씨라고 확정 판결했다.
배씨는 2012년 9월 무죄로 풀려났지만 재판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를 받은 듯하여 조씨에게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을 돌려주지 않았고 오히려 배씨는 재판 과정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던 증인들을 위증 및 교사 등 혐의로 고발하면서 현재 외부와 연락을 끊은 상태이다.
그러나 경북 상주시는 '훈민정음해례 상주본'을 상주박물관에 유치를 위한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고 2013년 4월 9일 밝혔다.
훈민정음 예의본
해례(解例)와 예의(例義)가 모두 포함된 해례본과 달리 예의 부분만 들어 있는 것을 예의본이라
부른다. 그런데 이 예의본은 단행본이 아니라, 《세종실록》과 희방사판(喜方寺版) 《월인석보》에
실린 것 등 여러 종류가 있다.
훈민정음 언해본은 해례본의 한 종류이나 편의상 따로 언해본으로 불린다.
언해본은 본디 한문(해례본/원본)으로 되어 있던 것이 1459년(세조 5년) 간행된
《월인석보》에 실린 훈민정음의 어제 서문과 예의(例義) 부분이 한글로 번역되어
〈세종어제훈민정음(世宗御製訓民正音)〉으로 합본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을 통상 언해본이라고 한다.
훈민정음의 뜻
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의의
이 책은 한글의 창제 원리를 설명하고 있으며, 중세 한국어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한 책이다.
《해례본》에 포함되어 있는 있는 예의(例義)는 특히 창제 당시의 자체(字體)를 그대로
보이고 있어서 그 중 가장 높이 평가된다.
또한, 해례는 오랫동안 문제로 삼던 글자의 기원 등 여러 가지의 의문점을 밝혀 주고 있다.
1940년 안동에서 발견된 간송본(국보 70호)과 2008년 상주에서 발견된 상주본 모두 한글
창제 원리를 풀이한 한문으로 된 해설서다.
훈민정음 창제 3년 뒤인 1446년(세종 28년) 편찬됐다.
서울 간송미술관에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과 동일한 판본이지만 상주본은
간송본보다 보존 상태가 좋고 학자의 어문학적 견해가 많아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예의본》은 《해례본》이 발견되기 이전에 훈민정음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일차적 문헌이었다.
훈민정음 해례본 번역 오류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 세계기록유산인 훈민정음은 잘못 번역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훈민정음 연구자들이 구두 권점의 기능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현대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각종 해독상의 오류도 여기저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데 그 중에 하나가
해례본 중 ‘전청지성응즉위전탁야(全淸之聲凝則爲全濁也)’라는 부분의 국역과 활용이
틀렸다는 지적이다. 정음파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고 전한다.
해례본의 응(凝) 자를 ‘된소리’로 해석한 오류
훈민정음 해례본 전탁(全濁, ㄲ·ㄸ·ㅃ·ㅉ·ㅆ·ㆅ) 관련 문구 "전청지성응즉위전탁야
(全淸之聲凝則爲全濁也)"에서의 응(凝)자가 '음조가 느리다'의 뜻이며, 전청=청성은
'탁성보다 그 음의 느리기가 절반, 곧 빠른 소리'의 뜻임을 나타내는 증빙자료로 내놓았다는
주장인데 훈민정음의 전통적 된소리 표기(ㅺ·ㅼ)가 1930년 조선총독부의 언문철자법 개정 시
강제 폐기되고, 대신 전탁음을 된소리 표기로 바꿔치기 한 것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어 ‘ㄲ·ㄸ·ㅉ·ㆅ’은 된소리가 아니라 장음이자 배음이며, 된소리 표기는 된시옷과
된비읍만을 사용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다.
해례본의 려(厲) 자를 ‘세차다’로 해석한 오류
1940년에 발견됐다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17쪽 뒷면~18쪽 앞면에 나오는 려(厲)를 살펴보면,
문장의 서두에서 ‘소리에는 느리고 빠름의 다름이 있다’고 운을 뗐으니 누구나 그 뒷부분을
보지 않고서도 소리의 느리고 빠름을 설명하는 대목임을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이 문장과 직결된 종성해(終聲解)의 결왈(訣曰) 부분에 ‘전청·차청 및 전탁음을
종성에 쓰면 모두 입성이 돼 그 소리가 촉급(促急)하다’고 했으니 려(厲)는 ‘촉급하다=빠르다’의
뜻이 분명하다”고 강조한다.
려(厲)가 ‘빠르다=촉급하다’라는 사실은 중국의 ‘문선(文選)’에서 확인 가능하다.
고려 때부터 선비들의 필독서인 문선은 중국에 현존하는 가장 이른 시문총집이다.
문선의 주석인 이선주(李善注)는 ‘응(凝)’을 ‘음조가 느리다’, ‘려(厲)’를 ‘촉급하다=소리가
빠르다’로 주했다. 이처럼 훈민정음 해례본의 필로(筆路)와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고 증거자료로
내놓았고 단국대 동양학연구소가 2008년 말 완간한 세계 최대 규모 한자사전인 ‘한한대사전
(漢韓大辭典)’은 ‘세차다’와 ‘촉급하다, 소리가 높고 빠르다’ 등 려(厲)의 뜻으로 39가지를 싣고
있는데 당시에는 ‘세차다’라고만 해석했다는 주장이다.
특히 ‘려(厲)’에 관련한 주장을 요약해보면 ‘려(厲)’는 훈민정음 아설순치후(牙舌脣齒喉)
각 음의 가획 이유를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글자인데 ㄴ에 획을 하나 더하면 ㄷ, ㄷ에 가획하면
ㅌ이 되는 까닭이 바로 ‘려(厲)’에 들어있다는 것이다.
한문으로 쓴 해례본에는 ‘려(厲)’자가 7회 등장한다. 이것을 한글학회와 국립국어원,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등 관련의 단체들이 모두 ‘려(厲)’를 ‘세다, 거세다’로 번역하여 해석했다는 것,
이를 토대로 국립국어원은 2011년 영문판 ‘알기 쉽게 풀어 쓴 훈민정음’을 내면서 ‘려(厲)’를
‘strong(스트롱)’이라고 옮겼다는 것이고 같은 맥락에서 한자 ‘최불려(最不厲)’를 ‘가장 약한 소리’로
국역한 후 영문으로는 ‘weakest sound(위키스트 사운드)’라고 적었지만 ‘려(厲)’는 ‘세다’,
‘세차다’가 아니고 해례본에 사용된 ‘려(厲)’는 모두 ‘빠르다’는 의미라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