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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일연 ,단군신화를 전하는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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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일연 ,단군신화를 전하는 기록

 

삼국유사(三國遺事)는 고려의 승려인 일연(一然)이 고려 충렬왕 7(1281)에 인각사(麟角寺)에서 편찬한

삼국 시대의 역사서이다.

2003년에 조선 초기의 간행본과 중종 임신본이 각각 대한민국의 국보 제306호와 제306-2호로 지정되었다.

 

삼국유사에는 삼국과 가락국(駕洛國 : 가야)의 왕대와 연대, 고조선 이하 여러 고대 국가의 흥폐·신화·전설·신앙

및 역사, 불교에 관한 기록, 고승들에 대한 설화, 밀교(密敎) 승려들에 대한 행적, 고승들의 행정, 효행을 남긴

사람들의 이야기 등이 수록되어 있다.

 

삼국유사에 실려있는 모든 설화는 삼국 시대의 것이지만, 유동하던 이야기가 고려 시대에 와서 문자로 정착된 것이다.

 

따라서 흘러다니던 설화의 내용이 일연이라는 개인에 의해 작품화된 셈이므로 고려의 설화문학으로 취급될 수 있다. 삼국유사에 수록된 설화의 주제는 주로 신라와 불교를 중심으로 편찬되어 있다. 고대사 연구에서 삼국사기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고 있다. 특히 단군 신화를 비롯하여 이두(吏讀)로 쓰인 향가(鄕歌) 14수가 기록되어 있어 국어 국문학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향가는 균여전(均如傳)에만 11()가 수록되어 있을 뿐, 다른 전적에는 전혀 전하지 않기 때문에 향가 연구에서 삼국유사는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또한 제왕운기와 더불어 단군 신화를 전하는 유일한 기록으로 고려 후기, 대몽항쟁 과정에서 급부상한 단군 신앙과 동족 의식을 반영한다.

구성

전체 5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5권 내에 다시 9편으로 나뉘어 있다. 권수는 편목의 유형에 따라 구분한 것이 아니라 분량에 따라 편의적으로 구분한 것이다.1이 왕력과 기이 두 편인데 왕력은 후대에 덧붙여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1. 1 왕력(王曆) 1 : 간략한 제왕의 연대기로 중국 역대 왕조를 기준으로 신라, 고구려, 백제, 가야를 대상으로 하여 B.C. 57년부터 A.D.936년 고려 태조에 의한 후삼국시대의 통일기까지를 시간적 폭으로 한 연대표이다.

2. 1 기이(紀異) 1 : 고조선, 위만조선, 삼한, 칠십이국, 낙랑군, 북대방, 남대방, 말갈·발해, 오가야, 부여, 이서국, 고구려, 백제 등 고조선으로부터 남북국시대 이전까지를 다루고 있으며 총 36조로 이루어져 있다.

3. 2 기이(紀異) 2 : 통일신라의 출현과 이후 역대왕들 그리고 기타 등등을 다루고 있으며 총 24. 고조선에서 고려 건국 이전까지 존재했던여러 국가와 여러 왕(특히 신라왕)에 대한 기이한 이야기를 연대기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전체 분량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방대하다.

4. 3 흥법(興法) 3 : 삼국에 불교가 처음 전래되고 흥성하는 과정을 기록했다. 8.

5. 3 탑상(塔像) 4 : 불교의 흥성에 따라 삼국(특히 신라)에 주목할만한 사탑이나 불상을 조성했던 사실을 기록했다. 29.

6. 4 의해(義解) 5 : 신라의 고승들이 보여주었던 뛰어난 행적을 통해 그들의 신앙심을 천명하였다. 14.

7. 5 신주(神呪) 6 : 신라 밀교계통 고승들의 기이한 행적을 통해 불교와 무속의 융합 및 호국 불교의 모습 소개. 3.

8. 5 감통(感通) 7 : 불심이 남달랐던 일반 신자와 승려들의 기적 체험을 통해 부처님의 가피력을 천명하였다. 10.

9. 5 피은(避隱) 8 : 구도 과정에서 세상을 등지고 홀로 불법을 닦은 승려들의 행적. 10.

10.5 효선(孝善) 9 : 세속적 윤리인 효와 불교적 윤리(윤회, 인과응보)의 결합을 통해 신라인의 효행 사례 기록. 5.

삼국사기와의 비교

삼국사기가 정사라면 삼국유사는 야사에 해당하는데, 이는 일연이 삼국사기정사라고  존중하면서 삼국사기에 채 실리지 못한 단군조선, 가야, 이서국 등의 기록과 수많은 불교 설화 및 향가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논자에 따라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비교하기 적당하지 않으며 오히려 같은 불교사서인 고승전과 비교해야 온당하다고 하기도 한다. 또한 시대를 구분하는 방법에서도 차이가 난다. 삼국사기에서는 성골이 아닌 진골이 집권하기 시작한 태종 무열왕부터를 중대로 삼았으며, 진골과 그 방계왕족간의 왕위다툼이 일어나기 시작한 선덕왕 이후를 하대로

보았다. 반면 삼국유사에서는 불교식 왕명과 중앙관제를 도입하고 체제를 정비하기 시작한 법흥왕을 중대의 시작으로 삼고, 중국식 시호를 받기 시작한 태종무열왕 이후를 하대로 보았다.

조작설

문정창은 이마니시 류가 삼국유사정덕본을 영인하면서 단군고기에 나오는 석유환국(昔有桓國)을 석유환인(昔有桓因)으로 바꿔서 출간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책에는 붓으로 덧칠하여 원래의 글자를 바꾼 흔적이 있으며 1904년 일본 도쿄 제국대학에서 출간된 삼국유사에는 해당 구절이 昔有桓國(석유환국)으로 인쇄되어 있다. 하지만 도쿄 제국대학본 삼국유사에도 昔有桓國(석유환국)에 이어 謂帝釋也(위제석야)라는 주해가 붙어 있어 "사람"이라는 의미로도 해석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규장각본에 ()자가 쓰인 동일한 페이지에 號朝鮮자가 같이 쓰이고 있어, 두 한자가 서로 다른 의미로 쓰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정덕본이 판각되기 이전에 편찬된 단종실록(노산군일기)단종 즉위년 628일 기록에는 삼국유사, 유왈 고기석유환인서자환웅...(《三國遺史》, 有曰 《古記》云 昔有桓因庶子桓雄...)” ’ ”으로 기록되어 있어 정덕본 이전의 삼국유사에 환인(桓因)으로 기록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최남선은 정덕본보다 고본(古本)송석하본(宋錫夏本, 석남본)을 비롯하여 광문회본(光文會本),순암수택본(順庵手澤本)등을 교감하여 정덕본의 자가 의 이체자(異體字)+ (또는 + , 자의 내부에 또는 가 들어 있는 형태)의 오자(誤字)임을 고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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