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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민족대표 33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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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민족대표 33인

 

민족대표 33인(民族代表三十三人)은 1919년 3·1 운동 때 발표된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명을 가리킨다.

종교별로 나누어 대표를 선정하여 천도교, 기독교, 불교에서 각 15명, 16명, 2명씩 참가했다.

 

이 가운데 1919년 3월 1일에 약속 장소인 태화관에 나오지 않은 사람은 길선주, 유여대, 김병조, 정춘수이다.

 

상하이로 망명해 체포를 피한 김병조와 나중에 무죄 판결을 받은 길선주, 그리고 체포 직후 구금 중에 사망한 양한묵을 제

외하고는 모두 이 사건으로 징역 1년 6개월에서 3년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들중 손병희등은 복역 중 병사하였다.

 

 

 

민족대표 33인 중 일부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

 

최린, 박희도, 정춘수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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