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의제문, 김종직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꼬다.
조의제문(弔義帝文)은 조선 시대 성리학자 김종직(金宗直, 1431년 ~ 1492년)이 지은 제사문으로 항우에게 살해당하여 물에 던져진 회왕 즉, 초 의제를 추모하는 글이다.김종직은 조선의 성리학자로 1459년 세조 5년에 과거에 합격하여 1489년 성종 20년 이르러서는 중용되어 형조판서까지 벼슬을 하였다.1492년 김종직이 죽은 지 6년 후 1498년 연산군 4년에 제자 김일손이 사관으로 있으면서 이것을 성종실록 사초에 적어 넣은 것이 원인이 되어 무오사화가 일어났다. 내용은 항우에게 살해당하여 물에 던져진 회왕 즉, 의제(義帝)를 조상한다는 제문이었지만,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꼬는 내용으로, 살해당하여 물에 던져진 단종에 대한 상황 묘사와 유사한 면이 있어 세조의 후인들은 정통성을 부정당하는 내용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부관참시(관을 부수어 시체의 목을 벰)를 당하고 많은 문집이 소각되었으며, 그의 제자들이 모두 참화를 당하였다.
조의제문
정축 10월 어느 날
나는 밀성 으로부터 경산 으로 향하여 답계역에서 숙박하는데꿈에 신(神)이 칠장의 의복을 입고 헌칠한 모습으로 와서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초나라 회왕인 손심(孫心)인데 서초패왕 에게 살해 되어빈강(郴江)에 잠겼다.”
그래서 문득 보이지 아니하였다.나는 꿈을 깨어 놀라며 이르기를
“회왕은 남초 사람이요, 나는 동이 사람으로지역간 서로 떨어진 거리가 만여 리가 될 뿐만 아니며 세대의 선후도 또한 천 년이 넘는데 꿈속에 와서 감응하니 이것이 무슨 상서로움일까 또 역사를 상고해 보아도 강에 잠겼다는 말은 없으니 어찌 항우가 사람을 시켜서 비밀리에 쳐 죽이고 그 시체를 물에 던진 것일까? 이것을 알 수 없으니 마침내 글을 지어 조문한다.
하늘이 사물의 법을 마련하여 사람에게 주었으니 어느 누가 사대와 오상을 높일 줄 모르리오. 중화라서 풍부하고 오랑캐라서 인색한 바 아니니 어찌 옛적에만 있고 지금은 없겠는가. 그러기에 나는 오랑캐이요. 또 천 년을 뒤졌건만 삼가 초 회왕을 조문한다.
옛날 조룡 이 아각을 가지고 노니 사해(四海)의 물결이 붉어 피가 되었어라. 비록 전유와 추애일지라도 어찌 보전하겠는가. 그물 벗을 생각에 급급했으니 당시 육국의 후손들은 숨고 도망가서 겨우 편맹과 짝이 되었다오. 항량(項梁)은 남쪽 나라의 장군의 자손으로 어호(魚狐)를 쪼치 일을 일으켰네. 왕위를 얻되 백성의 소망에 따랐어라 끊어졌던 웅역(熊繹)의 제사를 보존하였도다. 건부(乾符)를 쥐고 임금이 됨이여 천하에는 진실로 미씨보다 큰 것이 없었다. 장자(長者)를 보내어 관중에 들어가게 함이여 역시 족히 그 인의(仁義)를 보았다.
양흔낭탐이 관군(冠軍)을 마음대로 평정하였구나. 어찌 잡아다가 제부(齊斧)에 기름칠 아니했는고.
오호라!
형세가 너무도 그렇지 아니함이여 나는 왕에게 더욱 두렵게 여겼어라. 반서(反噬)를 당하여 해석(醢腊)이 됨이여 과연 하늘의 운수가 정상이 아니었구나. 빈의 산이 우뚝하여 하늘에 닿음에야 그림자가 해를 가리어 저녁을 향하고 빈의 물은 밤낮으로 흘러가는구나.
물결이 넘실거려 돌아올 줄 모른다. 천지가 장구한들한이 어찌 다할까 넋은 지금도 표탕하다. 내 마음이 금석을 꿰뚫음이여왕이 문득 꿈속에 임하였구나. 자양의 노필을 따라감이여 생각이 초조하여 흠흠하다 술잔을 들어 땅에 부음이어 바라옵컨데 영령은 와서 제사음식을 받으소서.
서초 의제
서초 의제(西楚 義帝, ? ~ 기원전 205년)는 중국 황제 중 한명로서 서초의 황제였다. 진나라(秦) 말기의 사람이며, 춘추전국시대 초나라 회왕의 후손이었다. 초나라(楚)의 군주, 진나라 멸망 후의 '중국의 황제'였으며 기원전 205년 무장 항우의 정변에 의해 축출되었다. 성은 미(芈). 씨는 웅(熊). 이름은 심(心)이다. 그 후손은 유(柳)씨, 침(郴)씨라 칭했다.기원전 208년부터 기원전 205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항우(項羽)가 서초 패왕(西楚覇王)으로 섭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