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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 긍정적 평가, 부정적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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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 오죽헌

 

 

신사임당, 긍정적 평가, 부정적 평가 

 

긍정적 평가

 

신사임당은 봉건 시대의 제약을 받았으면서도 여성으로서의 자기 개발에 매진했다.

시문과 그림, 글씨는 따를 사람이 없었을 정도로 조선 시대의 대표적 예술가로서의 생애를 개척하였다.

 

신사임당 생전에도 문정왕후나 정난정, 황진이, 장녹수나 한세기 전의 인물인 어우동, 유감동 등과 비교, 대조되어 훌륭한 여

성, 현모양처의 전형으로 존경받았다.

 

사후에도 서인의 이론적, 정신적 지주인 이이를 기른 훌륭한 어머니로 존숭되었고, 17세기에는 송시열에 의해 격찬되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그녀는 어머니와 부녀의 모범으로 양반 사대부가의 여식들에게 훈육되었다.

 

조선 후기 율곡의 학통을 이은 우암 송시열은 그녀의 시와 글, 서예작, 그림 등 찬사를 보내며 "그가 율곡을 낳으실 만하다"라

고 격찬하면서 그녀에 대한 국가적인 존경, 숭배는 강화되었다.

 

송시열은 자신의 스승 이이를 추켜세우면서 율곡의 부모 역시 성자(聖者)로 현창하려 하였으나 율곡의 아버지 이원수는 통덕

랑이라는 미관말직인데다가 무능력한 인물이라 결국 율곡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을 성자로 추앙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1960년대 제3공화국 당시 한국의 위인의 한사람으로 선정되어 추앙받았다.

 

그는 현모양처의 상징, 훌륭한 여성 작가,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으나, 대한민국 여성운동가, 여성계에서는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부정적인 평가

 

신사임당은 지와 덕을 겸비한 총명하고 인자한 어머니였지만 자식들의 곁에 그리 오래 있지는 못하였다.

 

대한민국의 여성계에서는 그가 조선시대 유교 이데올로기에 의해 미화된 인물, 일제 강점기에 강요된 이념의 잔재로 보며 부

정적으로 보고 있다.

 

'오늘날 신사임당이 대변하는 ‘현모양처’의 이데올로기는 일본 식민통치의 잔재', '기존 남성중심 사회의 구미에 맞았던 인물

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다시 내세워선 안 된다'며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

 

우리 역사에서 여성은 신사임당처럼 대개 희생으로 스러져간 인물들이다 라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신사임당이 여성의 평가절하의 수단으로 악용되었다는 시각도 있다.

 

'여성들은 지난 사회 분위기에 따라 역사로부터 외면당하고 평가절하되어 왔다.

교과서에 여성을 대표하는 인물로 그려지던 신사임당은 어떠한가.

신사임당은 시, 글씨, 그림 등에 뛰어난 실력을 가진 예술가였지만 우리 역사는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서의 신사임당을

강조한다.'

 

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신사임당은 항상 몸가짐을 조심하여 자식들을 교육시켰고,

남편에게는 올바른 길을 가도록 내조하면서 7남매를 훌륭하게 키웠다.

시부모와 친정어머니를 잘 모신 효녀효부로 알려져 있다"

위의 문장은 신사임당에 대한 자료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는 신사임당의 개인의 능력이나 삶을 보여주기 보다는 누군가의 딸이면서 아내이면서 며느리이자 어머니였던 신사임당을

표현하고 있다고 사례를 들었다.

 

그에 의하면 '역사 속에서 여성은 이렇게 한정적인 역할만을 맡아 왔다.'는 것이다.

 

신사임당을 이렇게 기록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역사를 기록하고 전수하는 모든 과정에 남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성 중심 사회를 살고 있었던 과거의 남성들은 여성을 역사서에 기술할 때 단편적이고 보편적인 여성상을 그리려고 했고,

그 대표적인 인물이 신사임당이었던 것이다.

 

여성운동가 김신명숙은 그가 현대 여성의 모델에 적합하지 않는 인물이라 비판하였다.

그에 의하면

 

"허난설헌은 살려야 할 역사적인 인물이다.

현모양처의 전형 신사임당은 이제 허난설헌에게 자리를 물려줘야 한다.

한국적 여성주의자가 없는 상황에서 한국적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고 비판하였다.

 

그에 의하면

 

"시대가 바뀌면 그 시대가 요구하는 역사적인 인물도 바뀐다.

조선시대로 국한시켜 보면 여성들의 경우는 신사임당이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신사임당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실제로 그랬느냐는 것은 별개의 문제고, 그런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이다.

남성들의 역사에서 남성들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진 신사임당이 그 동안 권력을 갖고 영향력을 행사해왔는데,

이제 'History'가 아니라 'Herstory'를 하겠다는 거다.

여성들은 남성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심하게는 조작되고, 은폐되었던 역사를 이제 여성의 시각으로 보겠다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 필요한 여성이라면 현재 우리 여성주의자들에게는 신사임당 보다는 허난설헌이다."

 

라는 것이다.

 

"신사임당도 훌륭한 여성입니다. 신사임당을 폄하 하자는게 아니고, 그 사람도 훌륭한 사람인데, 그러나 우리 시각으로 새롭

게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히스토리에서 만들어진 그런 모습이 아니라, 신사임당도 재조명해야 되고, 그리고 특히 새롭게 재조명해야 할 여성

상의 모델로는 '허난설헌이 적합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저를 비롯한 여성주의자들의 생각입니다."

 

라 하였다.

 

김신명숙은 신사임당을 대신할 여성의 모범으로 허난설헌을 지목하였다.

 

그에 의하면

 

"그래서 2003년 9월 말에 허난설헌 문화축제도 열구요.

허난설헌이 어떤 인물인지 잘 모르시죠?

조선시대에 아내도 아니고, 어머니도 아니고, 나로서 존재하려고 했던 사람이거든요.

나로서 존재하려고 몸부림쳤던 여성인데, 27살에 요절을 했죠.

천재 시인이고, 아주 뛰어난 여성이었는데, 삶도 아주 드라마틱하고, 극적 요소도 갖추고 있어요.

 여성주의적인 시각에서 충분히 새로 조명되어야 할, 신사임당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대신 차지할 만한 역사적 인물이라고

봅니다."

 

단순히 허균의 누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기타 시각

 

그는 조선왕조가 요구하는 유교적 여성상에 만족하지 않고 독립된 인간으로서의 생활을 스스로 개척한 여성이라 할 수 있다.

 

그밖에 '자식에게는 어진 어머니이고 남편에게는 착한 아내'라는 말뜻 그대로의 현모양처라면 신사임당이 현모양처라는 말은

맞고도 틀리다.'는 의견도 있다.

 

작가 김별아는 '스스로 지어 부른 사임당이라는 호가 성군의 대표 격인 중국 주나라 문왕의 훌륭한 어머니 태임을 배우고 본받

는다는 뜻인 만큼, 대학자이자 정치가인 율곡을 포함한 4남 3녀의 자식들에게 사임당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어머니였다.

 

실로 사임당이 우리 역사 속에서 `희귀'하다시피 한 여성 인물로 우뚝 자리 잡은 데는 율곡 이이가 쓴

`어머니의 일대기'(先行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율곡은 아버지 이원수의 행장은 쓴 적이 없지만, 어머니 사임당에 대해서는 절절한 그리움이 담긴 행장뿐만이 아니라 모친상

을 당한 직후 슬픔과 허무감에 빠져 금강산에 들어가 칩거했다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고 전제하였다.

 

그러나 '사임당이 '현모'였음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 전형적인 `현모양처'의 틀에 꼭 들어맞는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며 그 이유로 '율곡의 행장에서 드러나는 사임당의 모습은 놀랍게도 당시의 사회가 요구하던 여성상에 부합하

는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임당은 남자 집안 중심의 중국식 친영례가 자리 잡아 가던 조선 중기에 전통 혼례 방식으로 오랫동안 고향에 머무르며 친정

부모를 봉양했고, 좋게 표현하자면 남성 우위의 허세를 부리지 않고 아내의 의견을 존중하는 `부드러운 남자'지만 실제로는 학

문이나 재능이나 의지의 측면에서 사임당에게 턱없이 부족했던 남편 이원수에게 여필종부하기보다는 “실수하는 일이 있으면

반드시 옳은 도리로 간다”하였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김별아는 그가 성리학적인 가치관에는 부합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에 의하면 '아내의 투기는 칠거지악의 하나로 꼽히지만 사임당은 병약한 자신이 먼저 세상을 떠날 것을 예감하며 남편에게

자식들을 위해 새장가를 가지 말 것을 주장하는가 하면, 모친이 편찮을 때 몰래 외조부의 사당에 가서 기도했다는 율곡의 일

화로 미루어볼 때 사임당의 자식들 또한 부계보다는 모계에 더 큰 친화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처럼 실제 모습을 알면 알수록 신사임당은 `현모양처'라는 전통 여성상에 묶일 수 없는 독립적이고 진보적이며 강한 자의식

을 가진 여성임에 분명하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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