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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목왕후, 광해군이 폐위되자 복호되어 대왕대비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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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목왕후, 광해군이 폐위되자 복호되어 대왕대비가 되다.

 

인목왕후 김씨(仁穆王后 金氏, 1584년 12월 15일/음력 11월 14일 ~ 1632년 8월 13일/음력 6월 28일)는 조선 선조(宣祖)의 계비

이다.

 

흔히 인목대비(仁穆大妃)로 불리나, '인목(仁穆)'은 죽은 뒤에 받은 시호(諡號)이기 때문에 이는 잘못된 호칭이다.

선조 때 '소성(昭聖)'이라는 존호를, 광해군 때 '정의(貞懿)'라는 존호를 받아 통칭 소성대비(昭聖大妃)라 불렸다.

 

인조가 반정으로 즉위한 뒤 대왕대비가 되어 '명렬(明烈)'이라는 존호가 더해졌고, 죽은 뒤 '광숙장정(光淑莊定)'이라는 휘호

와 '인목'이라는 시호가 올려졌다.

 

고종 때에 '정숙(正肅)'이라는 존호가 추가로 더해짐으로써, 정식 시호는 소성정의명렬광숙장정정숙인목왕후(昭聖貞懿明

烈光淑莊定正肅仁穆王后)이다.

생애


본관은 연안이며 김제남(金悌男)의 딸로, 1584년 12월 15일(음력 11월 14일)에 태어났다.

선조의 정비인 의인왕후(懿仁王后)가 사망한 뒤 1602년에 왕비로 간택되어 19세의 나이로 51세의 선조와 가례를 올렸다.

 

1603년 정명공주(貞明公主)를, 1606년에 영창대군(永昌大君)을 낳았다.

1608년 광해군이 즉위하자 대북(大北)이 집권하였는데, 이들은 왕통의 취약성을 은폐하기 위해 인목왕후의 아버지 김제남을

사사(賜死)하고 이어 영창대군을 폐서인시킨 뒤 살해하였다.

 

인목왕후 역시 폐비되어 서궁(西宮)에 유폐되었다가,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자 복호되어 대왕대비가 되었다.

1632년 8월 13일(음력 6월 28일) 49세를 일기로 죽었으며, 선조와 의인왕후와 함께 경기도 양주시의 목릉(穆陵)에 묻혀 있다.

 

인목왕후의 서궁 유폐 생활은 그녀의 궁녀로 추정되는 작가가 쓴 《계축일기(癸丑日記)》에 전해진다.

금강산 유점사에 인목왕후가 친필로 쓴 《보문경》일부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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