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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가입진, 이성계가 창왕을 내쫓고 공양왕을 옹립하다.
폐가입진(廢假立眞, 폐가립진)은 1389년에 고려(高麗)의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이자 섭정(攝政)이었던 이성계(李成桂)가 창왕(昌王)을 보위에서 내쫓아 몰아 내고 공양왕(恭讓王)을 보위에 추대하여 옹립한 사건이다.
고려(高麗) 시대 말기인 1389년 11월 당시 고려(高麗)의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이었던 이성계(李成桂)가 우왕(禑王)의 아들 창왕(昌王)을 보위에서 내쫓아 몰아 내고 고려 왕족 종실 출신의 공양왕(恭讓王)을 허수아비 군주로 추대하여 옹립였다. 그리고 1개월 후 1389년 12월 31일 우왕(禑王)과 그의 아들 창왕(昌王) 두 폐주를 모두 공민왕(恭愍王) 치세 말기인 1371년에 사형 집행된 고려의 불교 승려 겸 정치가 신돈(辛旽, 본관은 영산(靈山))의 핏줄이자 가짜 왕씨 군주라하여 사형에 처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우왕(禑王)과 창왕(昌王) 부자가 공민왕(恭愍王)의 아들과 손자인 왕씨(王氏)가 아닌 신돈(辛旽)의 아들과 손자인 신씨(辛氏)라는 비왕설(非王說)은 단지 이성계(李成桂) 일파가 정치적 명분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날조된 모략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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