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정권, 무신의 난, 정중부, 이의방이 난을 일으켜 의종을 폐위시키다.
무신정권(武臣政權)은 의종 24년(1170)부터 원종 11년(1270)까지 100년간 무신들에 의해 수립된 정부를 말하며, 그 시기를 무인시대라 일컫기도 한다. 문치주의에 입각한 고려의 귀족정치는 무신의 사회적 몰락을 초래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열세에 놓여 있던 무신들에 대한 천대는 의종 때 극에 달했다. 그 때문에 일찍이 최질(崔質)·김훈(金訓) 등의 무신이 주동이 되어 쿠데타를 일으킨 일까지 있었다. 생활상으로도 크게 곤란을 받던 무신들의 불만은 오병수박희(五兵手縛戱)를 계기로 폭발하였다.
무신의 난은 1170년 의종 24년에 정중부, 이의방, 이고등에 의하여 일어났다. 이 반란의 성공으로 무신들은 의종을 폐위시키고 명종을 옹립하였으며, 많은 문신을 살육했다. 그 뒤 김보당이 의종 복위 운동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많은 문신들이 공모 혐의로 죽임을 당했다. 이 후 ‘조위총의 거병’ 등 무신에 대한 항거가 많았으나 모두 실패했다. 무신들은 〈중방〉을 중심으로 정권을 장악하고 관직의 독점, 사전의 확대를 통하여 정치적 지위와 경제적인 실력까지도 차지하게 되었다.
이제 문벌을 존중하고 문신들이 지배하던 고려사회는 변질되어, 실력 유무가 정권장악 여부를 결정하는 무신사회가 되었다. 이리하여 쉴새없이 같은 무신 사이에서 정권이 교체되었다. 즉 이의방은 이고를 죽이고, 딸을 태자비로 삼아 권세를 부리다가 정균(鄭筠)에 의하여 제거되었다. 그 후 홀로 득세하여 위세를 떨치며 방자한 행동을 자행하던 정중부가 경대승에 의해 살해되자, 이에 무신들은 경대승을 전체의 적으로 돌리려 했다. 여기에 위험을 느낀 경대승은 신변보호를 위해 〈도방〉을 설치했으나 병사하였으며 이의민이 권력을 누렸다. 그러나 그도 최충헌, 최충수(崔忠粹) 형제에 의해 살해되었다. 20여 년의 짧은 기간 동안 수차례 정권이 교체됨에 따라 일어난 사회적 혼란을 수습하고, 정권의 안정을 가져온 것이 곧 최충헌이었다. 그는 모든 적대세력을 차례로 억압하고 독재 정권의 수립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는 문신을 친하게 대하고 다른 무신들을 버리는 등, 문신 친화 정책을 펼쳤다. 또한 그는 문벌·전통에 대한 사회의 강한 집착 때문에 왕권을 존속시키기는 했으나 왕위를 마음대로 폐위하고 옹립하였다. 또한 그의 실력으로 사원 세력을 제거하고 농민과 노비의 난을 진압하여 최씨 정권의 기초를 마련했다. 그 뒤 최씨 정권은 고종과 함께 강화도로 옮겨 가서 몽골에 대항한다(→대몽항쟁, →고려-몽골 전쟁).
최충헌으로부터 최우, 최항, 최의에 이어지는 동안 7차에 걸쳐 몽골과 전쟁을 치렀으며, 그 와중에 지도력이 약화되었다. 이에 고려 조정에서는 점차 그 세력을 만회하기 시작한 문신들은 몽골와의 강화를 주장했다. 즉 문신들은 외세를 이용하여 무인세력을 견제하려고 한 것이다. 이리하여 몽골과 강화를 맺으려는 주화파는 일부 무신과 결탁하여 최씨 정권이 무너졌다. 결국 문신인 유경(柳璥)과 최의의 수하였던 김준에게 최의가 살해되고 1270년 개경 환도와 더불어 고려는 몽골과 강화를 맺고 전쟁은 끝이 났다. 그러나 무신정권 내부에서 갈등이 생겨 반발이 일어나고 일시적으로 원종이 폐위된다. 고려 태자가 원나라 황제에 원군을 요청함으로써 무인정권은 완전히 몰락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