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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현, 의열단원으로 독립운동을 하다 수차례 투옥되다.
김시현(金始顯, 1883년 ~ 1966년 1월 3일)은 한국의 독립 운동가이며 정치인이다. 자는 구화(九和), 호는 하구(何求)이다. 의열단원으로, 약산 김원봉의 든든한 사상적 동지였다.일본 메이지 대학교 법과를 졸업하고 3·1 운동 후 만주에서 의열단 활동 등을 하면서 독립운동을 하고 수차례 투옥되고 풀려나길 반복하였다.
옥중에서 광복을 맞고 풀려났으며, 그 후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1920년 김규식(金奎植)·여운형(呂運亨) 등과 함께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혁명단체대표자대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하였다.
1920년 9월경 의열단이 국내에 들어와 전국적인 규모의 폭동과 요인 암살을 기도하려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투척할 목적으로 국내에 폭탄반입을 시도에 가담하다 대구에서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서 징역 1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1년간 투옥되었다.
1952년 6월 25일 부산에서 열린 6·25 기념식장에서 유시태로 하여금 이승만 대통령을 암살하도록 하였으나, 권총이 불발에 그쳐 실패하였다.
이 사건의 주모자로 무기징역으로 받고 복역하다가, 4·19 혁명과 함께 복역 만 7년 10개월만인 1960년 4월 28일에 석방되었다. 그 후에 제5대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독립유공자 서훈은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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