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보기

근초고왕,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전사시키다.

반응형

 

 

 

 

근초고왕,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전사시키다.

 

근초고왕(近肖古王, ? ~375년, 11월 재위: 346년 9월~375년 11월)은 백제의 제13대 국왕이다.

 이름은 중국의 《진서(晉書)》에 의하면 여구(餘句), 일본의 《고사기》에는 조고 왕(照古王), 《일본서기》에는 초고왕(肖古王) 등의 이름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신찬 성씨록(新撰姓氏録)》에는 속고 왕(速古王)으로도 불린다. 근초고왕은 마한 54개 연맹체 중 하나였던 백제국이 차츰 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출 무렵 비류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체격도 아주 크고 용감했기 때문에, 둘째 아들임에도 차기 왕으로 지목되어 346년 계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근초고왕은 남으로 전라도 지역까지 마한 54개 연맹체 전체를 통일하였고, 북으로는 평양성까지 진격하여 고구려의 고국원왕전사시켰다.(371년)


 

남방 진출

근초고왕은 왜의 야마토 왕조와 국교를 수립하고 칠지도(七支刀)와 칠자경(七子鏡)을 보냈다. 백제가 언제부터 야마토 왕조와 통교하고 있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근초고왕에 이르러 양국 관계가 활기를 띤 것만은 분명하다. 

364년, 근초고왕은 가야의 부족국가 가운데 하나인 탁순국(위치 미상)에 사신을 파견하였으며, 366년 3월에는 사신을 보내 신라동맹을 맺고, 탁순국 왕을 통해 야마토 왕조와 외교관계를 수립하려 하였다. 당시 야마토 왕조는 탁순국에 사신 시마노스구데를 파견하였다가 백제가 왜와 통교하기를 원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자 시마노스구데는 근초고왕에게 부하 네 하야를 파견하였다.

 근초고왕은 네 하야를 반갑게 맞이하여 오색의 채견 1 필, 각궁의 화살, 그리고 철정 40매를 선물로 안겨 돌려보냈으며, 이듬해 367년 신라 사신 편에 구저(久氐), 비주류(彌州流), 막고(莫古)를 딸려보냈다. 

이들이 함께 왜에 도착함으로써 백제와 야마토 사이에 국교가 수립되었다. 한편 근초고왕은 신라와의 외교도 중시하여, 368년 명마 두필을 신라에 보내기도 했다.(근초고왕 23년).

고구려와의 전쟁
369년 9월, 고구려 고국원왕이 군사 2만을 이끌고 치양성(황해도 배천군, 구모로 성)에 쳐들어왔다. 그러자 근초고왕은 태자 근 궁수를 보내 고구려군을 크게 무찌르고 고구려군 5천여 명을 사로잡았다.

 삼국사기》에는 이때 고구려로 도망쳤다가 마음을 고쳐 돌아온 백제인 사기(斯紀)가 제공한 고구려의 군사정보 덕분에 태자가 고구려군을 격퇴할 수 있었다고 적고 있다. 371년에는 근초고왕이 태자 근구수왕 함께 패수(예성강)에서 고구려군을 물리치고 옛 대방(현 황해도) 대부분의 지역을 점령하였고, 이어 여세를 몰아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국원왕을 전사시켰다.

김부식의 《삼국사기》 백제 개로왕 본기에는 개로왕이 북위(北魏)에 보낸 표문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때 태자 연구수가 고국원왕의 목을 베어 창에 꽂아 효수하였다 한다. 이로써 백제국은 작게는 지금의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에서 크게는 강화도, 황해도까지 퍼져 있던 마한 54개 부족국가 연맹체를 통일한 것은 물론, 보다 강력한 고대 국가의 기반을 마련했다.

 근초고왕은 이러한 영토 확장을 기반으로 한반도의 패권을 손에 넣을 수 있었고 더욱 강력한 왕권을 세움으로써 왕위의 부자 세습 제도를 확립하였다.



외교 및 문화

근초고왕은 백제 역사상 최초로 중국 사서에 이름이 기록된 왕으로 알려져 있다. 진서(晉書)》에 따르면, 372년 음력 1월과 6월에 동진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는 한편, 《일본서기》에 기록된 바와 같이 아직기왕인 두 학자를 에 파견하여 왜의 왕이 그들을 태자의 스승으로 삼기도 했다.

 왜 왕에게 칠지도가 보내진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근초고왕은 또한 왕실의 존귀함을 알리고 국가 체제를 굳건히 할 목적으로 박사 고흥에게 명하여 백제 왕실의 역사를 정리하게 함으로써 《서기》가 저술되었으나 불행히도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일본서기》에 따르면 근초고왕이 철정 40매를 왜국에 보냈다고 기록되어 있어 왜는 근초고왕 재위 시에 가야와 백제로부터 철기를 수입했던 것으로 보인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