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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서노, 비류와 온조 두 아들과 남하하여 백제를 건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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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서노, 비류와 온조 두 아들과 남하하여 백제를 건국하다.

 

소서노(召西奴, 기원전 66년 ~ 기원전 6년)는 비류를 시조로 하는 백제 건국 설화에서 나오는 비류온조의 어머니이자 고구려 동명성왕 추모왕의 두 번째 부인이다. 졸본부여 왕의 둘째 딸이라는 설과 졸본부여 사람인 연타발의 딸이라는 설, 비류국 왕인 송양의 딸이라는 설 등 다양한 설이 있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 의하면 비류국 왕 송양의 딸은 추모왕의 아들인 유리왕의 부인이 되었으므로 소서노는 송양의 딸이 아니다.

 

설화

현재 정설로 받아 들여지는 설화는 다음과 같다. 《삼국사기고구려 건국 설화에 나오는 내용으로 '동명성왕졸본에 정착하여 졸본 부여왕(이름 미상)의 둘째 딸(이름 미상)과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았는데 비류온조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으로 볼때 졸본 부여왕의 둘째 딸이라고만 기록 되어 있을 뿐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졸본 부여왕의 둘째 딸 즉, 동명성왕의 부인은 이름이 소서노인지 확실 하지 않다. 또 다른 설화에는 연타발(延陀勃)의 딸이며, 북부여해부루(解扶婁)의 서손(庶孫)인 우태(優台)와 처음에 혼인하였다. 우태 사후, 동명성왕과 혼인하여 그를 도와 고구려 건국에 일조했다고 한다. 이후에 부여에 있던 동명성왕의 장자 유리명왕고구려에 올 때 추모왕과 결별하고 비류온조 두 아들과 함께 남하하여 백제를 건국했다고 전해진다.

소서노의 죽음

삼국사기》에는 소서노의 죽음이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

온조왕 13년(기원전 6년) 봄 (음력) 2월, 경성에서 늙은 할미가 남자로 둔갑했고, 다섯 마리의 호랑이가 성 안으로 들어왔다. 왕의 어머니가 죽었다. 나이 61세였다. (十三年 春二月 王都老化爲男 五虎入城 王母薨 年六十一歲)  ---삼국사기백제본기

 

가족 관계

아버지 : 미상 연타발이라는 설도 있고 졸본부여왕의 둘째딸이라는 설도 있다.)

어머니 : 미상

첫 번째 남편 : 우태 (동부여 해부루왕 서손)

장남 : 비류 (아버지는 우태)

차남 : 온조 (우태의 소생이라는 설도 있고, 주몽소서노가 혼인한 뒤 낳은 아들이라는 설이 있다.)

며느리 : 보화부인

두 번째 남편 : 주몽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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