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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국대전, 조선시대 최고의 법전, 경국대전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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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국대전, 조선시대 최고의 법전, 경국대전의 내용

 

경국대전(經國大典)은 조선시대의 최고의 법전이다. 조선 건국 초의 법전인 《경제육전(經濟六典)》의 원전(原典)과 속전(續典), 그리고 그 뒤의 법령을 종합하여 만든 통치의 기본이 되는 통일 법전이다. 세조는 즉위와 더불어 영원히 변치 않는 대법전을 편찬하려는 뜻을 품고, 육전상정소(六典詳定所)를 신설하여 육전상정관으로 하여금 편찬케 하고, 세조 스스로가 그 심의·수정을 보았다. 1460년(세조 6)에 먼저 재정·경제의 기본이 되는 호전(戶典)이 편찬되어 《경국대전》으로 명명, 판각을 만들고, 이듬해에 형전(刑典)의 완성을 보았으나 다시 개찬할 것을 명하였다. 1467년(세조 13)에 전편(全篇)의 편찬이 끝났으나 수정·보완을 거듭하다 그 반포·간행을 보지 못하고 세조가 죽었다.

 

이듬해 1월 1일부터 시행키로 했으나, 그 해 예종이 죽고 성종이 즉위하게 되었다. 성종 즉위 후에 다시 수정의 의견이 일어나 교정을 가한 후, 1470년(성종 1) 드디어 완성, 이듬해 1월 1일부터 시행했는데, 이것이 《신묘대전(辛卯大典)》이다. 이 《신묘대전》에 대한 수정의 논의로 1474년(성종 5) 새롭게 고쳐진 6전이 《갑오대전(甲午大典)》이며, 이것 또한 심사·수정을 거듭한 끝에 10년 후인 1484년(성종 15) 12월에 완성, 이듬해 1월 1일부터 시행한 6전이 《을사대전(乙巳大典)》이다. 오늘날 온전히 전해오는 《경국대전》은 《을사대전》이며 그 이전의 것은 하나도 전해지지 않는다.

 

편제와 내용은 《경제육전》과 같이 6분방식에 따라 이(吏)·호(戶)·예(禮)·병(兵)·형(刑)·공(工)의 순서로 되어 있고, 각 전마다 필요한 항목으로 분류하여 규정하였다. 이 대전의 조문은 법전에서 삭제되어서는 안되는 만세불역(萬世不易)의 법전이었다. 그러나 이 대전이 시행된 뒤 《대전속록(大典續錄)》 《수교집록(受敎輯錄)》 등의 법령집과 《속대전(續大典)》 《대전통편(大典通編)》《대전회통(大典會通)》 등의 법전이 편찬·시행되어 실제로 개정되거나 폐지된 조문이 적지 않으나 그 기본 이념은 계속 이어졌다. 1470년(성종 1) 11월에 인반(印頒)하고 1471년 신묘(성종 2) 정월부터 준행된 신묘대전(辛卯大典)을 초주갑인자(初鑄甲寅字)로 인출(印出)한 권3의 예전(禮典)에 해당되는 책이 현존하는 《경국대전》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521호로 지정되었다.

경국대전의 내용

<경국대전>은 이호예병형공의 육전체제로 되어 있다. 육전체제는 주례에 연유하는 것으로 천지춘하추동에 대응하는 것이다.

이전에서는 하늘이 만물을 주관하는 것을 본떠 국가를 통괄하는 관료제도를 규정하고 있는데, 내명부와 외명부 등 29항목으로 되어 있다. 왕실, 중앙과 지방의 관부, 관리의 임명과 승진 및 상벌 등을 규정하였다. 다만 신성한 존재인 국왕과 세자에 대해서는 규정하지 않았다.

호전에서는 땅이 삶의 근본임에 비추어 재정과 경제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데 경비, 호적 등 30항목으로 되어 있다. 국가의 재정은 횡간과 공안을 사용한다고 하여 국가재정의 기본원칙을 규정하고 회계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토지· 조세제도와 아울러 조운, 농경은 물론 토지와 관련한 매매 등 거래와 관련된 법을 규정하였다.

예전에서는 봄에 만물이 소생하는 것과 짝하여 각종 제도와 가족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제과, 의장, 등 35항목과 용문자식 등 25종의 문서 양식을 규정하였다. 관리 선발을 위한 과거제도와 관리 양성을 위한 교육제도를 규정하였으며, 친족관계를 나타내는 오복, 혼인과 상장례, 제사와 입후 등을 다루었다. 그리고 국가의 각종 의례와 관원들의 복식, 외교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각종 의식의 세부적인 절차와 복식 따위의 내용은 법전에 수록할 수 없다. 그렇게 때문에 '의주'조에서는 '오례의'를 쓴다고 하였으며 이에 따라 세종시대를 거쳐 성종 때에 <국조오례의>가 편찬되었다.

<국조오례의>에서는 각종 제사에 대한 '길례', 왕실의 혼인데 대한 '가례', 외국의 사신을 영접하는 '빈례', 군대의 의식에 대한 '군례', 상장례에 대한 '흉례'를 자세히 규정을 하였다. 그리고 가종 문서양식을 수록하고 있는데, 이는 조선사회의 관료적 특성과 함께 계급사회의 속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병전은 맹렬한 기세를 떨친 여름을 닮아 군사와 관련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모두 51항목으로 되어 있다. 군제와 직업군인 및 군역의무, 국방과 관련된 교통과 통신, 궁궐의 보위를 다루고 있다.

형전에서는 한해 농사를 마무리하는 가을의 취지에 따라 재판과 노비 그리고 상속에 대해 모두 28항목을 규정하고 있다. 먼저, 형사절차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백성들의 생명을 아끼는 흠휼과 애민정신의 표현이다. 노비에 대해 자세히 규정하고 각종 규제와 금제를 나열하고 있다. 상속에서는 재주(현재의 법률용어로는 피상속인)에 따라 상속인의 몫을 자세하게 규정하고 있는데 "분배하지 않은 노비는 아들과 딸의 생사를 막론하고 나누어 준다. ·······부모의 노비 ·······중자녀에게는 균등하게 나누어 준다"고 하여 남녀균분상속을 선언하였다. 첫 항목인 '용률'조에서는 대명률을 적용할 것을 선언하였다. 유교적 명분에 근거한 <대명률>은 고려 말 부터 주목을 받아 조선을 건국하는 과정에서 일반 형법으로 인식되었다. <대명률>은 어려워서 이해를 돕기 위해 1395년(태조4)에 이두로 번역되었는데 , 곧 <대명률직해>다. <경국대전>등 국전에 특별 규정이 있으면 이것이 <대명률>에 우선하여 적용되었다.

공전에서는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겨울의 의미를 되새겨 14항목을 두고 있으며, 도로, 도량형, 식산, 공장 등에 대해 규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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