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향원정, 왕족의 사적인 휴식 공간
경회루가 사신을 접대하거나 국가적 경사를 맞아 잔치를 베푸는 공간이라면
향원정은 왕족의 사적인 휴식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경회루가 웅장하고 남성적인 힘이 느껴진다면 향원정은 아름답고 섬세한
여성미가 느껴지지요?
향원정의 모태는 취로정이에요.
세조는 취로정을 짓고 후원에 개간한 논농사를 둘러본 뒤 이곳에 들러 휴식을 하면서
백성들의 힘든 생활을 잊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지금의 연못과 정자는 고종 10년 건청궁을 지을 무렵 다시 조성한 것입니다.
향원정은 주돈이의 <애련설> 가운데 '향원익청'에서 빌려온 겁니다.
현존 건물로는 유일하게 6각형의 중층 정자입니다.
취향교, 연꽃 향기를 머금다.
장안당쪽에서 섬안의 정자쪽으로 길게 뻗은 다리는 취향교입니다.
연꽃 향기에 흠뻑 젖는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리가 지금은 남쪽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지을 당시엔 건청궁 쪽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한국전쟁 때 불타 없어졌어요.
지금의 다리는 1953년에 가설한 겁니다.
건청궁 시절의 다리 유구가 섬의 북쪽에 남아있습니다.
향원지, 잔잔한 물결의 넓은 연못.
연못은 우주적 사상인 천원지방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모서리는 둥글게 했습니다.
넓은 연못의 잔잔한 물결에 오색 아롱진 단청의 정자와 취향교의 긴 그림자가
그림처럼 비치고 있습니다.
물속에는 물고기들이 노니고 수면 위에는 향기를 머금은 연꽃이 물결따라 흔들립니다.
향원정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아 다리 건너에 있는 정자를 바라보며
이 풍경을 여유있게 보고 있자면 마음마저 평온해집니다.
경복궁에 가게 되면 이곳 향원정에서 한참을 머물다 오곤 합니다.
열상진원, 맑은 물의 근원.
한강을 옛날에는 다른 말로 아리수 또는 열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열상은 열수의 위쪽인 한양을 뜻하는 말이죠.
이곳에서 솟아난 샘물이 향원지와 경회루를 지나 영제교를 거쳐 청계천으로 합류해서
한강으로 흘러가는 것이죠. 이곳이 한강의 진짜 근원이라고 하여
열상진원이라는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고종 때 석축을 쌓아 터를 정돈하고 둥글납작한 테두리안에 네모진 우물 몸통을 앉혔습니다.
이 샘은 경복궁 창건 당시부터 왕궁의 음용수로 사용했어요.
샘물은 홈통을 따라 흘러와 표주박 같은 돌확에 잠깐 머물다가 향원지로 바로 가지 않고
판석 밑에 뚫린 홈으로 흘러들어가 방향을 ㄱ자로 틀어 향원지의 잠수한 긴 물길을 따라
천천히 스며듭니다. 이렇게 물의 방향을 여러번 바꾼 것은 샘물이 수면 위로 바로 떨어지면
거울처럼 맑고 잔잔한 물을 이지러뜨리고 물속의 물고기들이 갑자기 흘러들어오는
찬물에 놀랄까봐 알맞은 온도를 맞추기 위함이었지요.
선조들의 풍류와 지혜가 엿보이죠?
전기발상지
향원정에는 전기발상지가 있습니다.
전기를 처음으로 고종에게 소개한 사람은 유길준입니다.
고종이 왕비를 잃고 죽음의 두려움으로 전전긍긍 할 때 궁정경비를 맡고 있던
육군 참장 이학균은 세태가 흉흉하므로 궁 안을 훤히 밝혀야 한다고 고종에게 건의했어요.
그래서 조정에서는 발전기와 전등 시설 일체를 에디슨 전기회사에 발주했습니다.
전기회사의 맥케이는 향원정 연못물을 끌어 석탄으로 발전기를 돌렸어요.
1887년 3월6일 저녁에 점등식이 있었습니다.
건청궁 안이 대낮 처럼 밝아진 것을 보고
사람들은 물불이라 하며 놀랍고 희한한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죠.
생각해보세요.
은은한 촛불로 어두운 밤을 비추다가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불빛을
생전 처음 봤으니 얼마나 신기했을까요?
제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이 설비는 중국이나 일본 궁성보다 약 2년 정도 앞선 것이라고 합니다.
초기에는 잦은 고장으로 전등이 깜빡깜빡하다가 꺼지는 경우가 많아서
건달처럼 들락날락 한다하여 건달불이라고도 했다고 해요.
발전기의 소음이 너무 커서 궁녀들은 밤에 잠을 못이루고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냉각수가 흘러들어 연못의 물고기들도 떼죽음을 당하는 변괴가 발생했습니다.
다음은 슬픈 역사의 현장인 건청궁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