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부정선거, 7개 구의 지구당 위원장을 당에서 제명하여 공화당 스스로 부정 선거임을 자인하다.
대한민국 제7대 총선(大韓民國第七代總選)은 4년 임기의 제7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로 1967년 6월 8일에 치러졌다. 소선거구제를 통한 직접선거로 131명을 선출하였다. 정당별 득표율에 따라 선출한 44명의 전국구를 포함하여 대한민국 제7대 국회의원은 모두 175명이다.
배경
의원 정수는 제6대 총선과 동일한 지역구 131명과 전국구 44명으로 총 175명이었다.
입후보
선거전은 지역구에 702명이 입후보하여 평균경쟁률은 5.4 대 1을 나타냈다. 이 선거에는 민주공화당과 신민당 이외에 대중당·민중당·자민당 등 모두 11개 정당이 참여하였다.
선거
투표율은 76.1%로 제6대보다 4% 가량 증가하였다. 선거결과 정당별 당선자는 민주공화당이 의원정수의 73.7%에 해당하는 129명(지역구 102명, 전국구 27명)으로 제6대보다 19명이 늘어나 절대다수의석을 자치하게 되었다. 신민당은 45명(지역구 28명, 전국구 17명)을 등원시켰고, 대중당이 1명에 나머지 8개 정당은 단 1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하였다. 정당별 득표율에서는 민주공화당이 50.6%의 득표율로 전체의석의 77.9%에 해당하는 102명을 당선시켰다. 반면에 신민당이 32.7%를 획득하여 당선비율 21.4%에 해당하는 28명을 당선시켰다.
의미
공화당은 여전히 농촌지역에서 압승을 거둔 반면에, 신민당은 대도시에서 크게 승리하여 ‘여촌야도현상’의 심화를 드러냈다. 특히 선거과정에서 저질러진 많은 부정 선거 행위로 말미암아 야당으로부터 전면 부정선거라는 문제가 제기되어‘전면 무효화’, ‘전면 재선거’를 요구하였고 의원등록을 거부하였다. 이러한 정국 혼란의 여파는 학원가에까지 번져 대학은 휴교조치에 이어 조기방학에 들어가게 되었고, 공화당 스스로도 "타락되고 혼탁한 분위기의 선거이었음에는 틀림이 없었다"라며 화성 지역구 권오석 당선자를 김형일로 착오시정 하였고, 보성 양달승, 평택 이윤용, 대전 원용석, 보령 이원장, 군산 차형근, 고창 신용남, 화순 기세풍, 영천 이원우 당선자 등을 제명하고, 7개 구의 지구당 위원장을 당에서 제명하여 공화당 스스로 부정 선거임을 자인했다.
선거 정보
총유권자수 : 14,717,354명
대통령 : 박정희 (민주공화당)
의석정수 : 175의석 (지역구 131석 + 전국구 44석)
선거제도 : 소선거구제 + 비례대표제
투표일 : 1967년 6월 8일
투표율
전국 선거인수 14,717,354명 중 11,202,317명이 투표하여, 투표율은 76.1%를 기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