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고구려비, 고구려가 신라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알 수 있다.
충주 고구려비(忠州 高句麗碑) 또는 중원 고구려비(中原 高句麗碑)는 대한민국에서 발견된 유일한 고구려비로 5세기 고구려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비의 높이는 2.03 m, 폭은 55 cm, 두께는 33 cm이고,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용전리 입석마을에 소재한다. 1981년 3월 18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205호로 지정되었다.
역사
충주 고구려비는 1979년 4월 8일 단국대학교 박물관 학술조사단에 의하여 고구려 시대의 석비로 판명됐다.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구려 석비로, 장수왕이 남한강 유역의 여러 성을 공략하여 개척한 후 세운 기념비로 추정된다. 1979년 입석마을 입구에서 발견되었는데, 오랜 세월이 흐른 탓에 발견 당시 비면이 심하게 마모되어 있었다.
충주 고구려비의 시기에 관해선 5세기 전반 광개토왕 때의 학설부터 6세기 평원왕 때의 학설까지 다양한 학설이 있으나, 449년 장수왕 때 축조됐다는 학설이 지배적이다.
충주시는 고구려 시기에는 국원성(國原城)이었으며, 신라가 이곳을 빼앗은 뒤 중원경으로 개칭했다. 충주가 충주시와 중원군으로 분리되어 있던 시기(1956년 - 1994년)에 발견되었기 때문에 흔히 '중원 고구려비'라고도 한다.
비석이 발견된 1979년 당시에도 마모가 심하게 진행되어 많은 글자를 알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형태는 넓적한 돌기둥처럼 보이며 자연석을 그대로 비석으로 활용하고 있다. 화강암으로 만든 비의 사면에 예서체 글씨가 1행 23자꼴로 528자 새겨져 있다.
마모가 심해 비문의 내용은 알아 볼 수 없지만 신라토내당주(新羅土內幢主)라는 표현을 통해 충주 고구려비를 만들 당시 고구려군이 신라에 주둔했으며 고구려가 신라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신라를 이(夷)라고 칭하는 부분에서 고구려의 독자적 천하관을 확인할 수 있으며 충주에 고구려비가 세워진 것을 통해 고구려의 남쪽 국경이 중원(현재의 충주)까지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2015년 10월 기준으로 현재 충주 고구려비가 있던 자리에는 전시관이 설립되면서 원본도 전시관 내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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