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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안대군, 이방의, 성격이 온후하고 화미한 것을 일삼지 아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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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안대군, 이방의, 성격이 온후하고 화미한 것을 일삼지 아니하다.

 

익안대군(益安大君, 1360년 ~ 1404년 9월 26일)은 고려 말기 사람이자 조선 전기의 왕족이다. 조선 태조의 셋째 아들로 이름은 방의(芳毅), 자는 관이(太寬), 시호는 안양(安襄)이다. 마한 안양공(馬韓安襄公)에 추증(追贈)되었다. 어머니는 신의왕후(神懿王后) 한씨(韓氏)이다. 부인은 증(贈) 찬성사(贊成事) 최인두(崔仁㺶)의 딸 철원 최씨(鐵原 崔氏)이다. 후에 마한 공정공(馬韓 恭靖公)에 추봉되었다.

 

생애

1392년(태조 1년) 8월 25일(음력 8월 7일) 조선 개국(朝鮮 開國)이후 여러 왕자(王子)들을 군(君)으로 봉(封)할 때에 익안군(益安君)에 봉작(封爵) 되었다. 이어 개국공신 1등에 추록되었다.

1398년(태조 15년) 10월 10일(음력 9월 1일) 익안공(益安公) 중군 절제사(中軍節制使)에 봉작(封爵) 되었다.

1398년(태조 15년) 11월 9일(음력 10월 1일) 정사 일등 공신(定社 一等功臣)에 책록(冊錄)되었다.

1398년(태조 15년) 음력 12월 15일(양력 1399년 1월 22일) 개국 일등 공신(開國 一等功臣)의 예(例)에 견주어 포상(褒賞)을 받았다.

대광보국숭록대부에 올랐다.

1401년(태종 1년) 2월 8일(음력 1월 25일) 익안부원대군(益安府院大君)에 봉작(封爵) 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성질이 온후(溫厚)하고 화미(華美)한 것을 일삼지 아니하였고, 손님이 이르면 술자리를 베풀어 문득 취하여도 시사(時事)는 말하지 아니하였다”고 적고있다. 마한 공정공(馬韓 恭靖公)에 추봉되었다.

 

사후

경기도 개풍군 흥교면 사곡리 백암동 해좌 언덕에 장사지냈고, 정종 사후 정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후일 묘소는 풍덕군 동면 백암리(白巖里) 해좌로 이장되었다. 1864년(고종 1년) 영종정경부사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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