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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왕

원성왕, 독서삼품과를 설치하여 인재를 등용하다. 원성왕, 독서삼품과를 설치하여 인재를 등용하다. 원성왕(元聖王, 706년 ~ 798년 음력 12월 29일/양력 799년 2월 8일, 재위: 785년 2월 26일(음력 1월 13일) ~ 798년 음력 12월 29일)은 신라의 제38대 왕이다. 성은 김씨(金氏), 휘는 경신(敬信)이다. 삼국사기에는 원성왕은 선덕왕과 마찬가지로 내물왕의 10세손으로 되어 있다. 생애 김경신은 혜공왕 때 선대 경덕왕의 관제개혁을 원상 복귀시키는 일에 참여하였다. 선덕왕 1년(780년) 이찬(伊飡)으로 상대등(上大等) 김양상과 함께 김지정의 난을 평정하고 상대등에 올랐다. 선덕왕 김양상이 죽고 대신들의 추대로 왕위에 올라 당과 통교하였다. 원성왕 4년(788년) 독서삼품과를 설치하여 인재를 등용했고, 이어 벽골제(碧骨堤)를 증축.. 더보기
경덕왕, 당과 활발히 교역하는 등 산업발전에 힘써 신라의 전성시대를 이루다. 경덕왕, 당과 활발히 교역하는 등 산업발전에 힘써 신라의 전성시대를 이루다. 경덕왕(景德王, ? ~ 765년, 재위: 742년 ~ 765년)은 신라의 제35대 왕이다. 성은 김씨(金氏). 휘는 헌영(憲英). 효성왕의 동복 동생이며, 아버지는 제 33대 왕 성덕왕. 어머니는 이찬 순원(順元)의 딸 소덕왕후(炤德王后).왕비는 서불감 김의충(金義忠)의 딸 만월부인(満月夫人, 경수왕후(景垂王后)). 효성왕에게 아들 없었기 때문에 742년 5월에 효성왕의 사망하여 왕위에 올랐다. 생애 효성왕(孝成王)의 친동생으로 효성왕이 죽자 왕위를 계승하였다. 742년 10월 일본국 사신이 이르렀으나 받아 들이지 않았다. 753년 8월에도 일본국 사신이 이르렀는데, 오만하고 예의가 없었으므로 왕이 그들을 접견하지 않자 마침내 .. 더보기
혜공왕 탄생설화, 혜공왕을 마지막으로 무열왕계의 직계 황통은 단절되다. 혜공왕 탄생설화, 혜공왕을 마지막으로 무열왕계의 직계 황통은 단절되다. 혜공왕(惠恭王, 758년 ~ 780년, 재위: 765년 ~ 780년)은 신라의 제36대 국왕이다. 성은 김(金)이고, 휘는 건운(乾運)으로, 경덕왕의 아들이다. 765년부터 780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765년부터 778년까지 모후 만월부인이 섭정하였고 778년부터 780년 붕어할 때까지 친정하였다. 탄생 설화 고려 후기의 명승(名僧) 일연의 삼국유사에 다음과 같은 탄생설화가 기록되어 있다. 신라 35대 임금인 경덕왕에게는 딸이 있었고, 아들이 없었다. 그리하여 경덕왕은 후계자가 없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다. 경덕왕은 표훈이라고 하는 승려랑 벗하며 지냈는데, 그는 사람들에게 널리 인정받는 고승(高僧)이며, 하느님과 이야기할 수 .. 더보기
석굴암 석굴암 석굴암은 서기 751년 신라 경덕왕 때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하기 시작하여 서기 774년인 신라 혜공왕 때 완공하였으며, 건립 당시의 명칭은 석불사로 칭하였습니다. 석굴암의 석굴은 백색의 화강암재를 사용하여 토함산 중턱에 인공으로 석굴을 축조하고 그 내부 공간에는 본존불인 석가여래불상을 중심으로 그 주벽에 보살상 및 제자상과 금강역사상, 천왕상 등 총 39체의 불상을 조각하였습니다. 석굴암의 석굴은 장방형의 전실과 원형의 주실이 통로로 연결되어 있는데 360여 개의 판석으로 원형주실의 궁륭천장 등을 교묘하게 구축한 건축 기법은 세계에 유례가 없습니다. 석굴암의 입구쪽에 위치하고 있는 평면방형의 전실에는 좌우로 4구씩 8부신장을 두고 통로 좌우 입구에는 금강역사상을 조각하였으며, 좁은 통로에..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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