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고니시 유키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함께 향토삼영걸로 불리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함께 향토삼영걸로 불리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일본어: 徳川家康 (とくがわ いえやす), 1543년 1월 31일 ~ 1616년 6월 1일)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이자 센고쿠 다이묘이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함께 향토삼영걸로 불린다. 가계는 미카와의 고쿠진 마쓰다이라 씨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 이후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동군을 지휘하였으며, 승전 이후 에도 막부를 개창하여 첫 쇼군(1603년 ~ 1605년)이 되었다. 1605년 3남 히데타다에게 쇼군 직을 물려준 다음에도 오고쇼의 자격으로 슨푸에 머무르며 정치에 참여하였다. 사후에는 닛코 동조궁에 묻혔으며, 도쇼다이곤겐(일본어: 東照大権現)이라는 시호를 얻.. 더보기
노량해전, 이순신 장군의 죽음 "싸움이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7년간의 전쟁이 끝나다! 노량해전, 이순신 장군의 죽음 "싸움이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7년간의 전쟁이 끝나다! 노량해전(露梁海戰)혹은 노량대첩(露梁大捷) 임진왜란 당시 1598년(선조 31년) 음력 11월 19일(양력 12월 16일) 이순신이 이끈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수군이 노량해협에서 일본의 함대와 싸워 크게 무찌른 대첩으로서, 이순신이 전사한 해전이기도 하다. 배경 행주산성에서의 패배와 수군의 잇다른 패배 그리고 명나라의 참전으로 전세가 불리해진 일본군은 휴전을 제의하고 자국으로 철군했다가 휴전 협상이 결렬되자 1597년에 15만 대군을 동원하여 조선을 다시 침공했다. 이것이 정유재란(丁酉再亂)이다. 그러나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에 다시 임명하여 전세를 가다듬은 조선 수군이 명량 대첩에서 일본 수군을 격파하고,.. 더보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