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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종

왕규의 난, 고려 혜종(惠宗) 때의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일어난 사건 왕규의 난, 고려 혜종(惠宗) 때의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일어난 사건 왕규의 난(王規之亂)은 고려 초기 왕실의 외척 왕규(王規)가 자신의 손자인 광주원군(廣州院君)을 왕위에 등극시키기 위해 일으킨 반란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왕권이 미약한 데에서 발생한 고려 혜종(惠宗) 때의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일어난 사건으로 고려사에서 승자에 의해 왜곡된 기록의 대표적인 사례로 여겨진다. 반란 전 왕규는 고려 초기 광주(廣州)의 대호족으로, 양근 함씨 였으나 개국공신으로 왕씨 성을 하사 받게 된다. 태조는 왕규의 두 딸을 맞아들여 하나는 제15비(妃), 하나는 제16비를 삼았다. 제16비가 아들 하나를 낳으니 광주원군이라 하였다. 945년 왕규는 야심이 있어서 혜종에게 무고하기를 요(窯)와 소(昭)가 딴 마음.. 더보기
황룡사, 신라 제일급의 대찰, 몽고의 침입으로 소실되다. 황룡사, 신라 제일급의 대찰, 몽고의 침입으로 소실되다. 황룡사(皇龍寺)는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었던 사찰로서, 경주에서 가장 컸던 사찰로 알려져 있으나,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황룡사는 9층 목탑과 장륙상(丈六像)과 더불어 신라 삼보(三寶)의 하나로 유명하였다. 신라의 사찰로 553년(진흥왕 14년) 기공이 시작되어 569년에 완공되었다고 여겨지나, 566년(진흥왕 27년) 일단 준공되었다가 645년(선덕여왕 14년)에 완성되었다는 설도 있다. 고려 고종 25년(1238년) 에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되었다. 현재 그 터인 황룡사지(皇龍寺址) 가 사적 제6호로 지정되어 있다. 황룡사 황룡사(皇龍寺)는 신라의 제일급의 대찰이었다. 창건설화(創建說話)에 의하면 새로운 궁전을 지으려 하였으나 황룡(黃龍)이 나타나.. 더보기
최승로가 성종에게 건의한 시무 28조 최승로가 성종에게 건의한 시무 28조 시무 28조(時務二十八條)는 고려 초 문신 최승로(崔承老)가 6대 임금 성종에게 건의한 28조의 시무책(時務策)이다. 성종이 경관 5품 이상으로 하여금 각기 시정의 득실을 논해 봉사를 올리도록 하자, 최승로는 이에 정치 이상을 펴 시무책을 올렸다. 그 취지는 태조의 정치를 이상으로 하고, 광종의 왕권 강화책을 반성하여 새로운 고려 사회를 만드는 데 있었다. 또, 유교 사상이 중심이 되어 임금은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해야하고, 스스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있다. 현재 전해져 오는 조항은 22개이다. ​ 내용 ​ 28조 중 22조가 전하는 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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