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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옥사

건저문제, 왕세자 책봉을 둘러싸고 동인과 서인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다. 건저문제, 왕세자 책봉을 둘러싸고 동인과 서인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다. 건저 문제(建儲問題)는 1591년(선조 24년) 왕세자 책봉을 둘러싸고 동인과 서인 사이에 일어난 분쟁이며, 건저의 사건(建儲議事件)이라고도 한다. 건저(建儲)는 왕의 자리를 계승할 왕세자를 정하던 일을 뜻한다. 배경과 과정 정여립 사건을 가혹하게 진압하여 서인의 영수 정철은 좌의정에 오르게 된다. 이에 동인은 원한을 품고 복수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선조의 총애를 받던 인빈 김씨가 신성군(信城君, 1578년~1592년 11월 5일)을 낳자 신성군은 선조의 총애를 받게 되었다. 당시 동인의 영수 영의정 이산해(李山海)가 인빈의 오빠 김공량(金公諒)과 친교하고 있었다. 이산해는 우의정이던 유성룡, 정철과 함께 세자 책봉을 논의한다. .. 더보기
정철, 세자 건저파동으로 파직되어 명천으로 유배되다. 정철 영정 정철의 편지 서신, 연대미상 3월10일자 정철, 세자 건저파동으로 파직되어 명천으로 유배되다. 정철 (鄭澈, 1536년 12월 18일(음력 12월 6일) ~ 1594년 2월 7일(1593년 음력 12월 18일))은 조선시대 중기의 시인이자 문신, 정치인, 학자, 작가이다. 본관은 연일(延日, 또는 迎日), 자는 계함(季涵)이고, 호는 송강(松江)·칩암거사(蟄菴居士)이며 시호는 문청(文淸)이다. 별명은 총마어사이다. 돈령부 판관(敦寧府 判官)을 지낸 정유침(鄭惟沉)의 아들이며, 인종의 후궁 귀인 정씨의 남동생이다. 1562년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은 의정부좌의정에 이르렀으며, 인성부원군에 봉군되었다. 정여립의 난과 기축옥사 당시 국문을 주관하던 형관으로 사건 추국을 담당하였으며, 기축옥사 수사 지.. 더보기
정여립의 난, 기축옥사 역모인가? 조작인가? 사진 출처 : 디지틀 조선 정여립의 난, 기축옥사 역모인가? 조작인가? 기축옥사(己丑獄事)는 조선 선조 때의 옥사로 1589년 10월의 정여립이 모반을 꾸민다는 고변으로부터 시작되어 정여립과 함 께 3년여간 그와 연루된 많은 동인이 희생된 사건이다. 정여립의 옥사로도 부른다 . 정여립은 호남 지역에 대동계(大同契)를 조직하여 무술 연마를 하며, 1587년에는 왜구를 소탕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대동계의 조직은 더욱 확대되어 황해도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이들의 동정이 주목을 받게 되고, 마침내 역모를 꾸미고 있다는 당시 황해도 관찰사의 고변이 임금에게 전해지자 조 정은 파란을 일으켰다. 고변의 내용은 정여립의 대동계 인물들이 한강의 결빙기를 이용해 황해도와 전라도에서 동시에 봉기하여 입경하고 대장 신 립과 .. 더보기
유성룡, 청렴하고 정직한 삶을 살다간 조선의 명재상 (1) 유성룡의 편지 서신 유성룡, 청렴하고 정직한 삶을 살다간 조선의 명재상 류성룡(柳成龍, 1542년 11월 7일(음력 10월 1일) ~ 1607년 5월 31일(음력 5월 6일))(류성룡)은 조선 중기의 관료, 인문학자, 의학자, 저술가이다.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이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경상도 의성의 외가에서 태어났으며, 간성군수 유작(柳綽)의 손자이며, 황해도 관찰사 유중영(柳仲郢)의 차남이다. 이황의 문하에서 조목(趙穆)·김성일과 동문 수학하였으며 성리학에 정통하였다. 과거를 통해 관료로 등용되어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정여립의 난과 기축옥사를 계기로 강경파인 이산해, 정인홍 등과 결별하고 남인을 형성하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직전 군관인 이순신과 원균..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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