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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금관가야, 금관가야는 유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왕위가 부자에게 정통적으로 세습된 국가이다. 금관가야, 금관가야는 유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왕위가 부자에게 정통적으로 세습된 국가이다. 금관가야(金官伽倻), 본가야(本伽倻)는 42년부터 532년까지 존재했던 나라로, 신라에게 멸망하기 전 국명은 가락국(駕洛國)이었다. 가락국(駕洛國)은 1세기 중엽부터 4세기 말까지 가야 연맹체의 맹주였다. 그러나, 4세기 말 왜와 연합하여 신라를 공격하다가 400년에 신라의 구원 요청을 받은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공격으로 종발성 등 낙동강의 동쪽과 북쪽 지역(현재의 부산, 양산, 밀양)에 대한 지배력을 잃고, 반파국과 안라국에 연맹체의 맹주 자리를 내주었다. 국명 금관가야(金官伽倻)라는 이름은 가야 시대로부터 한참 후대인 고려의 왕건이 붙인 이름이다. 금관가야에 대해 처음 사서에 전하는 이름은 구야국(狗邪國) 또는 .. 더보기
김헌창의 난, 부친 김주원이 왕이 되지 못하자 반란을 일으키다. 김헌창의 난, 부친 김주원이 왕이 되지 못하자 반란을 일으키다. 김헌창의 난(金憲昌-亂, 822년)은 신라 제41대 헌덕왕 때 김헌창이 자기의 부친 김주원(周元)이 왕이 되지 못한 것에 원한을 갖고 일으킨 반란이다. 신라 말기는 정치적인 혼란기를 겪으며 왕위 쟁탈을 중심으로 음모, 반역, 골육상잔의 난이 그치지 아니하였다. 800년 제40대 애장왕이 즉위하자, 섭정이 되어 상대등에 오른 원성왕계 자손인 김언승(이후 41대 헌덕왕)은 세력을 쌓아 조카인 애장왕을 살해하고 809년 제41대 헌덕왕에 오른다. 이때 태종 무열왕계 자손으로 왕위 경쟁을 벌이던 김주원은 명주(강릉)로 물러나게 된다. 그러나 그의 아들 김헌창은 계속 중앙정계에 남아 807년에는 시중으로 임명되었고, 당시 상대등 김언승에 버금가는 권..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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