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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당전쟁

김품일, 화랑 관창의 아버지, 아들 관창과 나당전쟁에 출전하다. 김품일, 화랑 관창의 아버지, 아들 관창과 나당전쟁에 출전하다. 김품일(金品日, ? ~ ?)은 신라 태종 무열왕 때의 장군이다. 금관가야 왕족이며, 대야성주 김품석의 동생, 화랑 관창의 아버지이다. 660년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칠 때 아들 관창과 함께 출전하였다. 664년 문무왕 때 김인문 등과 함께 고구려의 돌사성을 공격하였다. 668년 나·당 연합군이 고구려를 쳐들어갈 때, 귀당총관으로서 공을 세웠으며, 백제의 유민들이 소동을 일으킨 63개의 성을 빼앗았다. 화랑 관창(官昌)의 아버지이다. 진골(眞骨) 출신으로 관등은 이찬(伊飡)에 이르렀다. 생애 660년 (태종무열왕 7)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할 때 김유신(金庾信)·김흠순(金欽純) 등과 함께 신라군을 이끌고 백제를 공략하였다. 백제.. 더보기
매소성 전투, 신라는 당군의 기병 수천을 전멸시켜 나당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키다. 매소성 전투, 신라는 당군의 기병 수천을 전멸시켜 나당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키다. 매소성 전투는 나당 전쟁 당시 675년 신라와 당나라가 매소성에서 벌인 전투로, 신라는 이 전투에서 당나라 20만 대군을 격파하여 그 간의 패배를 만회하고 나당 전쟁의 전세를 역전시켰다. 배경 신라가 당나라군이 주둔한 옛 백제, 고구려의 땅을 되찾기 위해 670년 일으킨 나당 전쟁은 672년 신라가 웅진성의 웅진 도독부를 축출하여 백제 땅을 되찾는 등 신라에게 점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에 675년 당나라의 장수 이근행은 20만 대군을 이끌고 신라 매소성 인근 지역을 공략하고 신라는 매소성 인근의 당나라군을 격파하기 위해 매소성을 총공격한다. 전투 과정 매소성의 당나라군을 격파하기 위해 신라 명장 김유신의 둘째 아들 .. 더보기
나당전쟁, 신라군은 안승을 고구려 왕으로 삼아 고구려 부흥운동을 전개하고 매소성 전투에서 대승리를 거두다. 나당전쟁, 신라군은 안승을 고구려 왕으로 삼아 고구려 부흥운동을 전개하고 매소성 전투에서 대승리를 거두다. 나당 전쟁(羅唐戰爭)은 670년부터 676년까지 신라와 당나라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신라는 이 전쟁에 승리함으로써 삼국 통일을 이루고, 대동강 이남의 한반도 중·남부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했다. 배경 648년(진덕여왕 2년), 신라와 당나라는 양국이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에 대동강을 양국의 경계로 할 것을 합의하고 군사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당나라는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에 신라와의 약속을 어기고, 신라의 내부 분열을 획책하면서 신라를 포함한 한반도 전지역을 당나라에 편입시키려 하였다. 660년에 백제가 멸망한 뒤, 당나라는 그 지역에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를 비롯한 5개 도독부를 .. 더보기
보장왕, 당나라와 신라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고구려 멸망하다. 보장왕, 당나라와 신라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고구려 멸망하다. 보장왕(寶臧王, ? ~ 682년)은 고구려의 제28대 국왕(제위: 642년~668년)이다. 휘는 장(臧) 또는 보장(寶臧)이다. 나라가 멸망해서 시호는 없다.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연개소문에 의해 왕위에 올랐으며, 당나라와 신라 연합군의 파상 공격을 받아 고구려가 멸망하자 체포되어 당에 포로로 끌려가 복국(復國)을 꾀하였으나 실패한 뒤 사망하였다. 642년부터 665년까지 대막리지 연개소문이 실권을 맡았으며 연개소문이 관직에서 물러난 665년부터 668년까지 친정하였다. 즉위 보장왕은 평원왕의 셋째 아들이자 영양왕의 이복동생이며 영류왕의 친동생인 대양왕(혹은 태양왕이라고도 한다.)의 맏아들이다. 언제 태어났는지는 분명치 않으며, 642년 음.. 더보기
김유신, 삼한일통을 이루는데 중추적 역할을 하다. 김유신, 삼한일통을 이루는데 중추적 역할을 하다. 김유신(金庾信, 595년 ~ 673년 음력 7월 1일(양력 8월 18일))은 신라의 군인 겸 정치가이자 외척이었다. 신라에 귀순한 가야 왕족의 후손으로서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리고 삼한일통을 이루는 데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신라의 장군이며 정치가이다.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과 문무왕(文武王)을 도와 신라의 삼국 통일 전쟁을 보좌하였으며, 진평왕(眞平王)부터 문무왕에 이르는 다섯 명의 왕을 섬겨 신라 정권의 중추적 인물로 성장하였으며, 신하로서 왕으로 추봉된 유일한 인물이며, 무열왕 의 즉위 및 삼국 통일 전쟁 등에 기여한 공적을 인정받아 왕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순충장렬흥무대왕(純忠壯烈興武大 王)으로 추존되었다. 신라의 역사에서뿐 아니라 후대 고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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