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단발령

단발령, 일본인, 서양인들의 진언에 따라 고종은 최초로 단발을 감행하다. 단발령, 일본인, 서양인들의 진언에 따라 고종은 최초로 단발을 감행하다. 단발령(斷髮令)은 김홍집 내각이 고종 32년인 1895년 음력 11월 15일(양력 12월 30일)에 공포한 성년 남자의 상투를 자르고 서양식 머리를 하라는 내용의 고종의 칙령이다. 서양인, 일본인들의 단발 건의 이후 당시 내무부대신 유길준 등의 상주로 전격 단행되었다. 당일부로 고종과 황태자 순종은 솔선수범하여 머리를 깎고, 내무부대신 유길준은 고시를 내려, 관리들로 하여금 칼과 가위를 가지고 도성 거리나 성문에서 백성들의 머리를 깎게 하여 이를 직접 지도감독했으며, 전국으로 확산시켰다. 그러나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는 당대의 성리학자들의 격렬한 반발로 1897년(건양 1년) 일단 철회되었으나, 1900년(광무 3년) 이후 광무개혁을.. 더보기
최익현, 을사늑약에 저항한 의병장 최익현, 을사늑약에 저항한 의병장 의병장 종교 유교 부모 아버지 최대(崔岱) 최익현(崔益鉉, 양력 1834년 1월 14일 / 1833년 음력 12월 5일 ~ 1907년 1월 1일)은 조선 말기와 대한 제국의 정치인이며 독립운동가이자, 을사늑약에 저항한 의병장이다. 김기현의 문하에서 수학하다 이항로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흥선대원군의 월권행위를 비판하였다. 1855년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올랐으며 동부승지, 참의, 돈녕부의 도정 등을 역임했고 안동 김 씨 세도정치에 반대, 1863년 흥선대원군의 집권과 개혁 정책을 적극 지지했다. 그러나 1874년 흥선대원군을 공격하여 실각시켰다. 그 뒤 의정부 찬성 등을 역임하였다. 그는 고종 즉위 직후부터 나온 정도전 정인홍, 윤휴, 이현일 등의 복권 여론을 친구 .. 더보기
갑오개혁, 세 차례에 걸친 제도 개혁운동 갑오개혁, 세 차례에 걸친 제도 개혁운동 갑오개혁(甲午改革)은 1894년 양력 7월 27일(음력 6월 25일)부터 1895년 8월까지 조선 정부에서 전개한 제도 개혁 운동을 말한다. 갑오경장(甲午更張)이라고도 불렸다. 내각의 변화에 따라 세분화하여 제1차 갑오개혁과 제2차 갑오개혁으로 나눌 수 있으며, 후에 을미개혁(제3차 갑오개혁)으로 이어지게 된다. 군국기무처 개혁의 기간과 내용 한말(韓末)에 일어난 임오군란·갑신정변·동학혁명 등은 극도로 부패한 조선왕조와 양반계급에 대한 민중의 자아 각성에 의한 반발이며, 누습에 젖은 수구파(守舊派)에 대하여 신제도로 개혁하려는 개화파의 혁신의 부르짖음이었다. 그러나 민중의 자아각성과 근대적 혁명을 기도한 동학혁명은 마침내 외세의 개입으로 소기의 성과를 보지 못하고.. 더보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