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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정벌

최윤덕, 세종 치세에 이종무와 더불어 대마도를 정벌하다. 최윤덕, 세종 치세에 이종무와 더불어 대마도를 정벌하다. 최윤덕(崔閏德, 1376년 ~ 1445년)은 조선의 무신이다. 본관은 통천(通川)이며, 자는 여화(汝和)·백수(伯修), 호는 임곡(霖谷)이다. 시호는 정렬(貞烈)이고, 세종묘에 배향되었다. 일찍이 무과에 올라 부친을 따라 여러 전장에서 무공을 세웠고, 벼슬은 병조판서를 거쳐, 무신으로 우의정, 좌의정을 역임하였다. 또한 최초의 영중추원사가 되었으며 궤장을 하사받았다. 세종 치세에 이종무와 더불어 대마도를 정벌하였고, 북방의 여진족을 정벌하고 4군을 설치하여 압록강유역의 국경선을 확정하였다. 전국에 여러 읍성과 산성을 축성하여 축성대감으로 불렸다. 유년기 1376년(고려 우왕 2년)에 창원시 북면 내곡리 무릉촌에서 조선초 명장인 양장공 최운해의 장남.. 더보기
대마도 정벌, 왜구의 침입을 방지하는 효과를 가져오다. 대마도 정벌, 왜구의 침입을 방지하는 효과를 가져오다. 대마도 정벌(對馬島征伐)은 13세기에서 16세기까지 한반도와 중국을 침략하여 노략질하던 왜구의 본거지인 쓰시마(대마도)을 정벌한 사건이다. 역사적으로 제1차 대마도 정벌은 1389년(고려 창왕 2년) 박위(朴葳)가 이끌었으며, 제2차 대마도 정벌은 1396년(조선 태조 5년)에 있었다. 가장 유명한 제3차 대마도 정벌은 1419년(세종 1년)에 이종무(李從茂)가 이끈 정벌로, 기해동정(己亥東征)이라고도 한다. 일본에서는 오에이의 외구(일본어: 応永の外寇)라고도 부르며, 당시 대마도에서는 누카다케 전쟁(糠嶽戰爭)이라고 하였다. 배경 쓰시마는 조선과 일본 양국 사이에 있어 중개를 맡는 특수 사정도 있거니와, 원래 그 토지가 협소척박(狹小瘠薄)하여 식량을.. 더보기
세종, 훈민정음 창제, 과학을 발전시키고 유교 정치의 기틀을 마련하다.(1) 세종, 훈민정음 창제, 과학을 발전시키고 유교 정치의 기틀을 마련하다. 세종(世宗, 1397년 5월 7일(음력 4월 10일) ~ 1450년 3월 30일 (음력 2월 17일), 재위 1418년 ~ 1450년)은 조선의 제4대 왕이다. 성(姓)은 이(李), 휘(諱)는 도(祹), 본관(本貫)은 전주(全州), 자(字)는 원정(元正)이다. 사후 묘호(廟號)는 세종(世宗), 시호(諡號)는 장헌대왕(莊憲大王)으로, 정식 시호는 세종장헌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世宗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이다. 태종(太宗)과 원경왕후(元敬王后)의 셋째 아들이며, 비는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 심온(沈溫)의 딸 소헌왕후 심씨(昭憲王后 沈氏)이다. 한성 준수방(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통인동) 고을에서 아버지 정안군 이방원(靖安君 李芳遠)과 어머..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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