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무신왕 썸네일형 리스트형 광개토왕비, 고구려사 연구와 금석문 연구의 좋은 사료가 되다. 광개토왕비, 고구려사 연구와 금석문 연구의 좋은 사료가 되다.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 또는 광개토왕비(廣開土王碑)는 현재 중화인민공화국 지린 성 지안 시(集安市) 태왕진(太王鎭, 중국어 간체: 太王镇)에 있는 고구려 제19대 광개토왕의 능비이다. 중국, 일본에서는 호태왕비(好太王碑)라 부른다. 개설 414년 광개토왕의 아들 장수왕이 세웠으며, 응회암(凝灰岩) 재질로 높이가 약 6.39m, 면의 너비는 1.38~2.00m이고, 측면은 1.35~1.46m지만 고르지 않다. 대석은 3.35×2.7m 이다.네 면에 걸쳐 1,775자가 화강암에 예서로 새겨져 있다. 그 가운데 150여 자는 판독이 어렵다. 내용은 대체로 고구려의 역사와 광개토왕의 업적이 주된 내용이며, 고구려사 연구에서 중요한 사료(史料)가 .. 더보기 호동왕자, 낙랑공주와 혼인, 대무신왕의 아들 호동왕자, 낙랑공주와 혼인, 대무신왕의 아들 호동(好童, ? ~ 32년 음력 11월)은 고구려의 제3대 국왕 대무신왕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갈사왕의 손녀이자 대무신왕의 차비(次妃)이다. 낙랑 정벌에 공을 세웠으나 원비(元妃) 소생의 이복형제 해우(훗날 모본왕)와의 태자 다툼에서 패하여 자살하였다. 아내 낙랑공주와의 이야기가 창작물의 주요 소재가 되고 있다. 출생 대무신왕과 그 차비에게서 태어났다. 생모는 갈사왕의 손녀이다. 얼굴이 아름답고 왕이 총애하여 호동이라 이름 지었다. 원비도 아들 해우가 있었는데 호동보다는 나이가 어렸다. 고구려 초기 왕족의 성씨는 고(高)씨인지 해(解)씨인지 불분명하므로 호동의 성씨 역시 명확하지 않다. 낙랑공주와의 혼인 기원후 32년(대무신왕 15년) 음력 4월, 호동이 옥저..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