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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공사관

고종, 홍릉 황제릉의 양식 고종, 홍릉 황제릉의 양식 능의 구성 홍릉은 조선시대 말기에 조성된 능역으로,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황제릉의 양식을 따라 명나라 태조의 효릉을 본떠 조영하였다. 능침의 삼계를 없애고 석물을 배전의 앞으로 배치하고, 정자각 대신 일자형 건물의 배전을 세웠다. 능침 주위에 배치되었던 석수들은 배전 앞, 참도의 좌우에 그 종류를 더하여 나란히 세워져 있다. 능침은 병풍석으로 하고 난간석을 둘렀으며 능침을 수호하는 석양과 석호는 세우지 않고 혼유석1좌, 그 양 옆으로 망주석 1쌍을 세우고 그 앞으로 사각장명등을 설치하였다. 석물의 배치는 홍전문과 배전 사이에 문석인, 무석인, 기린, 코끼리, 사자, 해태, 낙타, 말의 순으로 대칭 되어 있다. 참도는 어도와 신도의 두 단으로 구.. 더보기
아관파천, 고종이 경복궁을 떠나 러시아 제국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기다. 아관파천, 고종이 경복궁을 떠나 러시아 제국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기다. 아관파천(俄館播遷)은 1896년 2월 11일부터 1897년 2월 20일까지 1년간 조선 고종과 세자가 경복궁을 떠나, 어가를 러시아 제국 공사관으로 옮겨서 거처한 사건이다. 러시아 공사관 (1900년경) 명칭 1864년 조선 고종 1년 이후 러시아 제국을 한자로 ‘아라사’(俄羅斯)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하였다. 따라서 ‘아관’(俄館)이란 러시아 대사관을 뜻하며, 당시 일본에서는 러시아를 ‘노서아’(露西亞)라고도 하기 때문에, 노관파천(露館播遷)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에 '노서아'라는 명칭이 등장한 것은 1905년 대한제국 광무 9년 9월 5일 노서아-일본의 강화 조약 기록이 유일하며, 러시아 대사관을 ‘노관’(露館)이라고 칭..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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