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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이.망소이의 난

무신정권의 사회, 토지 질서의 붕괴로 농민들의 삶을 위협하다. 무신정권의 사회, 토지 질서의 붕괴로 농민들의 삶을 위협하다. 무신정변은 문벌과 문신들의 주도와 무신에 대한 차별에 반기를 든 정변으로, 무신들이 근본적인 사회개혁을 추구한 것은 니었다. 그러나 무신정변 이전부터 고려사회는 상층으로부터 하층사회에 이르기까지 서서히 변화하고 있었으며, 무신정변 이후에는 그 변화가 더욱 현저해졌다. 무신들의 집권이 확고해지자, 무신과 문신간에 공존을 위한 타협이 진행되면서 통혼이 이루어졌다. 특히 집권 무신세력들과 기존의 문벌들 사이에서 적극적으로 통혼이 추진되었다. 이는 집권 무신세력들로서 문벌층의 권위를 끌어들이는 것이었고, 문벌층으로서도 집권세력과의 연결을 통해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해나가는 길이었다. 이로써 지배층의 상층부는 집권 무신세력들을 중심으로 기존의 문벌층이 .. 더보기
망이·망소이의 난, 고려시대의 민중 봉기 망이·망소이의 난, 고려시대의 민중 봉기 망이·망소이의 봉기(亡伊亡所伊-蜂起)는 고려 무인 집권 때 사회질서가 문란해진 틈을 타서 일어난 민중 봉기이다. 고려 시대 특수 행정구역이었던 향, 소, 부곡에 해당된 수공업자의 집단 거주지인 공주 명학소의 망이와 망소이는 1176년 고려 명종 6년 음력 1월 굶주린 무리를 모아 봉기하여 공주를 함락하였다. 고려 조정은 선유(宣諭)에 실패하여, 정황재(丁黃載)와 장박인(張博仁)에게 이것을 진압하게 했으나 쉽지 않자 명학소를 충순현(忠順縣) 으로 승격하게 하는 등 회유(懷柔)해서 봉기를 접게하려고 했다. 그러나 불응하고 예산현을 공략한 봉기민(蜂起民)들은 1177년고려 명종 7년 정월에 관군의 진압에 항복했다가 조정의 비열한 처사에 불 만하고 그 해 2월 재봉기하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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