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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

무령왕릉, 7호분 벽돌무덤, 양나라로 부터 들여온 굴식벽돌무덤이다. 무령왕릉, 7호분 벽돌무덤, 양나라로 부터 들여온 굴식벽돌무덤이다. 무령왕릉 (武寧王陵)은 공주 송산리 고분군 가운데 7번째로 발견된 고분으로, 백제 무령왕과 그 왕비의 능이다. 1971년 7월 7일 처음 발굴되었다. 지석이 발견되어 축조연대를 분명히 제시해주었기 때문에 삼국 시대 고고학 편년연구의 기준 자료가 되고 있으며, 국보로 지정된 금제관식, 금제뒤꽂이, 금제 심엽형이식(귀걸이), 지석, 석수, 청동신수경 등을 포함하여 총 2900여 점의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국립공주박물관이 대부분 보관하고 있다. 무령왕릉을 포함한 공주 송산리 고분군은 사적 13호로 지정되어 있다. 위치는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옛지명 : 송산리)이다. 송산리 고분군과의 관계 무령왕릉은 송산리 고분군에 속해 있으며 고분군 .. 더보기
무령왕, 사신을 보내어 외교관계를 강화하고 백제의 문화 발전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다. 무령왕, 사신을 보내어 외교관계를 강화하고 백제의 문화 발전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다. 무령왕(武寧王, 462년~523년 6월 5일(음력 5월 7일), 재위: 501년~523년)은 백제의 제25대 국왕으로 성은 부여(扶餘)이다.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지석에 따르면 462년 태어났고 이름은 사마(斯麻) 또는 융(隆)이다. 아버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백제신찬》에 따르면 무령왕의 아버지는 개로왕으로 그가 동생 곤지와 부인을 공유했다고 하나, 이것은 왕위 계승의 정통성을 이끌어 내려는 시도라는 설이 있다. 또한 《백제신찬》과 《일본서기》에는 개로왕의 동생인 곤지왕자의 아들이고, 동성왕은 이복형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 《삼국사기》 와 《삼국유사》에는 동성왕의 둘째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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