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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거세

박제상, 망부석 설화, 야마토에 볼모로 있는 왕자 미사흔을 구출해 신라로 보내다. 박제상, 망부석 설화, 야마토에 볼모로 있는 왕자 미사흔을 구출해 신라로 보내다. 박제상(朴堤上, 363년 ~ 418년 추정)은 신라의 충신이다. 자는 중운(仲雲), 호는 관설당(觀雪堂)·도원(挑園)·석당(石堂) 등이다. 혁거세 거서간의 9세손, 파사이사금의 5세손이며, 영해 박씨(寧海朴氏)의 시조이다. 《삼국유사》는 김제상(金堤上)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생애 삽라군(歃羅郡)의 태수직을 수행하였다. 눌지 마립간 즉위 10년(426년)에 왕의 명을 받아, 고구려에 볼모로 있던 눌지 마립간의 동생 복호(卜好)를 구하여 신라로 돌아왔으며, 이어서 야마토에 볼모로 있는 왕자 미사흔을 구하러 건너갔다. 왕자를 구출하여 신라로 보낸 후, 그를 신하로 삼으려는 인교 천황의 설득을 거절하다가 죽었다. 행적에 대해서는 .. 더보기
아로공주, 박혁거세 거서간의 따르 신라 시조묘의 제사를 주관하다. 아로공주, 박혁거세 거서간의 따르 신라 시조묘의 제사를 주관하다. 아로공주(阿老公主)는 남해차차웅의 친누이이자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 거서간의 딸로, 신라 시조묘의 제사를 주관하였다. 생애 시조묘(始祖廟)의 제사장(祭司長)이었다. 제2대 남해차차웅의 누이이다. 서기 65년 (남해차차웅 3년)에 세워진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의 사당에 일년에 네 차례 정기적으로 지내는 제사를 맡았다. 신라 초기의 왕실 여성은 왕권의 하나인 제사권을 분담하였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신처(神妻)로서 조령(祖靈)에 봉사하는 여성은 미혼녀일 것이 요구되었으므로, 기실 그녀는 남해차차웅의 왕비인 아루부인(阿婁夫人)과 같은 인물이면서도 남해차차웅과 남매관계에 있다고 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아로의 왕실제사 기록은 본디 사제(司祭).. 더보기
사소부인, 박혁거세 거서간의 생모, 선도산의 산신 사소부인, 박혁거세 거서간의 생모, 선도산의 산신 사소부인(娑蘇夫人) 또는 서술산성모(西述山聖母)는 《삼국유사》에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 거서간의 생모로 전혀 내려오는 인물로, 경주시 선도산의 산신이다. 다른 이름으로 선도산성모(仙桃山聖母), 선도성모(仙桃聖母) 또는 파소부인(婆蘇夫人) 등으로도 불린다. 점필재 김종직은 사소부인이 지리산 산신과 동일인이라 보기도 했다. 생애 《삼국유사》를 쓴 일연은 박혁거세 거서간이 하늘에서 강림하였다고 기록하였다. 사로국 6부 촌장들이 임금을 세우는 회의를 하던 중 하늘에서 백마가 운반해온 큰 알에서 박혁거세 거서간이 나왔다는 내용으로 서술하였다. 그러나 일연은 이 이야기 옆에 작은 글씨로 주석을 단다. 서술자가 말하기를 “서술성모(西述聖母)가 박혁거세 거서간을 낳았다”.. 더보기
남해 차차웅, 국왕이면서 제사장 역할을 하다. 남해 차차웅, 국왕이면서 제사장 역할을 하다. 남해 차차웅(南解次次雄, 남해 이사금, 기원전 50년 ~ 24년, 재위 4년 ~ 24년)은 신라의 2대 국왕으로, 혁거세왕과 알영부인의 적자이다. 이름은 남해(南解), 다른 이름은 민해(愍海)이다. 그의 칭호에 대하여는 국왕이면서 동시에 제사장 역할을 했다는 설이 있다. 왕호 "차차웅"이라는 왕호에 대해서 《삼국사기》는 김대문을 인용하여, "차차웅 혹은 자충(慈充)은 무당을 이른다. 세상 사람들이 무당이 귀신을 섬기고 제사를 받들기에, 그를 외경해 마침내 존귀한 어른을 일컬어 자충이라고 하게 되었다." 고 전하는 바, 이는 신라가 아직 샤머니즘적인 부족사회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치세 6년(즉위 3년) 음력 1월에 시조 혁거세 거서간의 .. 더보기
김알지, 전설로 전해지는 신라 김씨 왕조의 시조 김알지, 전설로 전해지는 신라 김씨 왕조의 시조 김알지(金閼智, 65년 ~ ?)는 정사가 아닌 전설로 전해지는 신라 김씨 왕조의 시조이다. 탈해 이사금 때 태어났으며 그의 7대손 미추 이사금이 김씨 최초로 왕에 즉위하였다. 정식 역사에서는 실존 인물로 파악하고 있지 않다. 생애 65년 탈해왕이 밤에 금성(金城) 서쪽 시림(始林)의 수풀 속에서 닭 울음 소리를 듣고서 신하 호공(瓠公)을 시켜 가보게 하였다. 금빛의 작은 함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밑에서 울고 있다고 호공이 보고하자, 왕이 직접 가서 함을 열어보니 용모가 아름다운 사내아이가 나왔다. 이때부터 시림을 계림(鷄林)이라 하고, 아이는 금함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김씨라 하였다. 《삼국사기》 〈미추왕조〉에는 알지가 세한(勢漢)을 낳고 세한..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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