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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홍

민립대학설립운동, 일제의 식민지 우민화 교육에 맞선 민족교육을 위한 교육운동을 전개하다. 민립대학설립운동, 일제의 식민지 우민화 교육에 맞선 민족교육을 위한 교육운동을 전개하다. 민립대학설립운동(民立大學設立運動)이란 1920년대 초반 실력양성운동의 일환으로 일제의 식민지 우민화 교육에 맞서 우리의 손으로 대학을 설립할 목적으로 일어난 문화 운동이다. 배경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는 우민 정책을 실시하여 실업 교육을 강조한 반면 고등 교육은 거의 실시하지 않았다. 3·1운동 이후 문화 정치를 표방한 일제에 맞서 조만식, 이상재, 한용운, 이승훈, 송진우, 장덕수 등 47명의 조선 민족주의자들은 고등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조선인의 실력양성을 표방하며 조선민립대학기성회를 조직, 일제의 식민지 우민화 교육에 맞선 민족교육을 위한 교육운동을 전개하였다. 내용 1923년 3월 29일 조선민립대학기성회는.. 더보기
좌우합작운동, 중도파 세력 주축으로 좌우 세력 연대를 추진하다. 좌우합작운동, 중도파 세력 주축으로 좌우 세력 연대를 추진하다. 좌우합작운동(左右合作運動) 혹은 좌우합작위원회(左右合作委員會)은 1946년에 일제 강점기 이후의 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조선의 좌우 세력이 합작하여 연대를 추진하였던 운동을 말한다. 이 운동에는 중도파 세력 인사들이 주축으로 구성되어 전개되었다. 모스크바 3상 회의 1945년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신탁통치 문제를 놓고 좌,우익 세력 간의 대립이 상당히 격화되었다. 좌익세력에 박헌영이 신탁통치 찬성 입장을 발표하면서 우익진영은 박헌영을 성토한 뒤, 반탁운동을 주장하였고 김구·이승만 주도로 1945년 12월부터 신탁통치반대운동이 있었다. 12월 27일 김규식은 최초에는 신탁통치 반대입장을 펼쳤지만, 신탁통치 전문을 입수, 읽어본 후 신탁통치의.. 더보기
광복절, 8월15일, 8월16일 당시 상황 광복절, 1945년 8월15일,16일 당시 상황 광복절(光復節)은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 제국이 패전하여 일제 강점기에 놓였던 한국이 해방이 된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다. 광복은 문자 그대로는 “빛을 되찾음”을 의미하고 나라를 되찾았다는 뜻으로 쓰인다. 일부에서는 1948년의 같은 날짜에 이루어진 대한민국 건국을 함께 기념하는 날로 여기기도 한다. 제2차 세계 대전은 1943년에 접어들면서부터 점차 연합군측에 유리하게 되어, 그해 11월말에 미국·영국·중화민국 3국은 소위 카이로 선언을 발표했다. 이어 1945년 5월에 나치 독일이 항복하였고, 8월 8일에는 미국과 영국, 소비에트 연방이 모여 포츠담 선언을 발표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드디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을..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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