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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조

유리명왕, 주몽이 서거하자 왕위를 이어받다. 유리명왕, 주몽이 서거하자 왕위를 이어받다. 유리명왕(瑠璃明王, 기원전 38년 ~ 기원후 18년)은 고구려의 제2대 국왕(재위 : 기원전 19년 나이 20세 - 기원후 18년 나이 56세)으로 휘는 유리(榴璃 또는 類利) 또는 유류(孺留)이다. 동명성왕과 왕후 예씨의 맏아들이다. 기원후 3년에 졸본에서 수도를 위나암 국내성으로 옮겼고, 계비 치희를 그리워해서 지었다는 황조가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재위 33년인 서기 14년에 무휼을 태자로 삼았고, 2만 명의 군대와 오이와 마리장군을 보내 서쪽의 양맥(梁貊)을 치고, 또 현도군의 고구려현(高句麗縣 또는 高句驪縣)을 쳐서 복속시켰다.다른 이름은 여달(閭達), 여해(閭諧), 시여해(始閭諧)이며, 삼국지의 위서 고구려전에는 그의 이름을 원래 여달이었다가 아버.. 더보기
소서노, 비류와 온조 두 아들과 남하하여 백제를 건국하다. 소서노, 비류와 온조 두 아들과 남하하여 백제를 건국하다. 소서노(召西奴, 기원전 66년 ~ 기원전 6년)는 비류를 시조로 하는 백제 건국 설화에서 나오는 비류와 온조의 어머니이자 고구려 동명성왕 추모왕의 두 번째 부인이다. 졸본부여 왕의 둘째 딸이라는 설과 졸본부여 사람인 연타발의 딸이라는 설, 비류국 왕인 송양의 딸이라는 설 등 다양한 설이 있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 의하면 비류국 왕 송양의 딸은 추모왕의 아들인 유리왕의 부인이 되었으므로 소서노는 송양의 딸이 아니다. 설화 현재 정설로 받아 들여지는 설화는 다음과 같다. 《삼국사기》 고구려 건국 설화에 나오는 내용으로 '동명성왕이 졸본에 정착하여 졸본 부여왕(이름 미상)의 둘째 딸(이름 미상)과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았는데 비류와 온조다.' 라고.. 더보기
백제 건국 설화, 온조설화, 비류설화, 구태설화 백제 건국 설화, 온조설화, 비류설화, 구태설화 백제 건국 설화란, 삼국 시대의 고대 국가 백제의 건국에 관해 전해내려오는 설화를 말한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백제 건국 이야기는 모두 3가지로서, 그 중 2가지는 《삼국사기》에 전하며 나머지 한 가지는 《수서》와 《북사》에 전해진다. 《삼국사기》에 전하는 설화가 각각 온조 설화와 비류 설화이고, 《수서》에 전하는 설화는 구태설화로 불린다. 《삼국사기》의 저자들은 두 설화 중에 무엇이 옳은지 모르겠다고 밝힌 뒤 두 설화를 모두 언급했다. '백제 건국 설화'라고 할 때, 보통은 현재 가장 많이 알려지고 유력하게 인정받고 있는 온조 설화만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온조 설화 온조 설화는 백제의 시조가 온조라고 전하고 있으며, 현재 가장 많이 알려진 백제 건국 .. 더보기
비류, 백제 온조의 형, 미추홀에 나라를 세웠으나 자결하다. 비류, 백제 온조의 형 비류(沸流)는 우태의 장남 혹은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의 차남으로, 백제 온조왕의 형이다. 온조와 함께 고구려의 남쪽 지방으로 내려가 비류는 해변에 살기를 원하였으나 10명의 신하가 간언하기를, “생각건대 이 하남의 땅은 북은 한수를 띠고, 동은 고악을 의지하였으며, 남은 옥택을 바라보고, 서로는 대해를 격하였으니, 그 천험지리가 얻기 어려운 지세라 여기에 도읍을 이루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자, 비류는 듣지 않고 미추홀(지금의 인천)을 도읍으로 정해 나라를 세웠으나,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백성들이 살지 못하여 동생이 세운 나라로 이주하자 자결하였다. 백제의 시조가 비류라는 시조 비류설에 따르면, 어머니 소서노(召西奴)는 졸본 사람으로 우태에게 시집와 비류와 온조 두 아들을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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