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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히로부미

고종 양위 사건, 헤이그 밀사 사건의 책임을 추궁해 강제로 순종에게 양위하다. 고종 양위 사건, 헤이그 밀사 사건의 책임을 추궁해 강제로 순종에게 양위하다. 고종 양위 사건(高宗讓位事件)은 1907년 7월 20일 고종이 헤이그 밀사 사건의 책임을 추궁하는 일본의 강압에 못이겨 제위를 순종에게 위임했다가 바로 양위한 사건이다. 고종이 헤이그 회의에 이상설과 이준 등을 보내 밀서를 전달하려 한 사실을 접한 일본이 이토 히로부미에게 책임을 추궁했고 , 이토 히로부미는 고종에게 책임질 것을 요구했다. 당시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은 고종이 책임지고 퇴진하는 것으로 사태를 종결하려 했으나,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원인 고종은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에게 헤이그 밀사 편으로 밀서를 전달하였다. 1907년 7월 1일 일본 외무성으로부터 이토 히로부미 앞으로 날아온 한 장의 전문이 한국 황실.. 더보기
한일신협약, 정미년에 강압에 의해 체결된 협약으로 한국 식민지화에 박차를 가하다. 한일신협약, 정미년에 강압에 의해 체결된 협약으로 한국 식민지화에 박차를 가하다.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 일본어: 第三次日韓協約)은 1907(융희 1)년 7월 24일 대한제국과 일본 제국 사이에 체결된 불평등 조약이다. 조약이 체결된 해가 정미년이었기 때문에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이라고 부르며 제1차 한일 협약, 제2차 한일 협약(을사조약) 등과 구분하기 위해 제3차 한일 협약(第三次韓日協約)이라고도 한다. 별칭으로는 정미협약(丁未協約), 정미7조약(丁未七條約), 제2차 을사 조약(第二次乙巳條約) 등의 별칭이 있다. 배경 헤이그 특사 사건(海牙特使事件)을 빌미로 일본 정부는 이토 히로부미를 대한제국 경성에 파견, 한국 측이 을사 보호 조약을 위반하였다 하여 고종에게 압력을 넣어 퇴위시키고 1907년 7월.. 더보기
시모노세키 조약, 청일전쟁의 강화회의로 체결된 조약 시모노세키 조약, 청일전쟁의 강화회의로 체결된 조약 시모노세키 조약(한자: 下關條約 하관조약, 일본어: 下關条約, 중국어 간체: 马关条约, 정체: 馬關條約)은 1895년 3월 20일부 터 야마구치 현 시모노세키 시에서 열린 청일전쟁의 강화회의로 체결된 조약이다. 4월 17일 일본제국의 이토 히로부미와 청나라의 이홍장 사이에서 체결되었다. 이 조약은 5개 항목으로 청나라의 조선간섭을 물리치고 일본이 조선과 만주까지 지배력을 뻗칠 수 있게 하였다. 배경 청나라와 일본국이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1894년 7월 25일부터 1895년 4월까지 벌인 전쟁이다 . 중국에서는 갑오년에 일어났다고 하여 중일갑오전쟁(중국어 간체: 中日甲午战争, 정체: 中日甲午戰爭), 일본에서는 일청전쟁(日清戦争), 서양에서는 제1차 중일..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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