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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치

서경덕, 황진이, 박연폭포와 함께 송도삼절(松都三絶)로 유명하다. 서경덕, 황진이, 박연폭포와 함께 송도삼절(松都三絶)로 유명하다. 서경덕(徐敬德, 1489년 음력 2월 17일 ~ 1546년)은 조선 중기의 학자로서, 주기파(主氣派)의 거유이다. 본관은 당성(唐城), 자는 가구(可久), 호는 복재(復齋)·화담(花潭)이다. 시호는 문강(文康)이며 부친은 부위(副尉) 서호번(徐好蕃)이다. 독학으로 사서육경을 연마했으며 정치에 관심을 끊고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일생을 바쳤다. 평생 여색을 멀리했는데, 개성의 유명한 기생 황진이는 그를 시험하고자 교태를 부리며 유혹하였으나 꿈쩍하지 않았다. 그의 인품에 감격한 황진이는 그를 스승 겸 서신과 시문을 주고받는 사이로 남았다. 스승없이 독학을 한 학자로도 유명하며, 박연폭포, 황진이와 함께 송도삼절의 하나로 꼽힌다. 그는 평생을.. 더보기
이익, 성호사설, 신분제 타파와 이혼 옹호론을 펼치다. 이익, 성호사설, 신분제 타파와 이혼 옹호론을 펼치다. 여성 교육에 대한 비판 그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을 거치면서 여자의 권리 상승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피력했다. 특히 일부 사대부가와 중인층에서 딸에게 글공부를 가르치는 것을 잘못이라 생각하였다. 여자들에게도 글공부와 학문을 가르치는 조선 후기의 풍조를 그는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그는 '여자는 열심히 일하고 검소해야 하며,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을 지켜야 한다. 고 했다. 독서나 강의는 남자가 할 일이지 여자가 할 일이 아니다. 여자들은 아침상을 준비하고, 제사상에 올릴 음식을 장면하고 길쌈도 해야 하는데 언제 책을 읽을 시간이 있겠는가? 그리고 학식이 있다 하는 부인들을 보면 배운 것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나쁜..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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