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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덕

최윤덕, 세종 치세에 이종무와 더불어 대마도를 정벌하다. 최윤덕, 세종 치세에 이종무와 더불어 대마도를 정벌하다. 최윤덕(崔閏德, 1376년 ~ 1445년)은 조선의 무신이다. 본관은 통천(通川)이며, 자는 여화(汝和)·백수(伯修), 호는 임곡(霖谷)이다. 시호는 정렬(貞烈)이고, 세종묘에 배향되었다. 일찍이 무과에 올라 부친을 따라 여러 전장에서 무공을 세웠고, 벼슬은 병조판서를 거쳐, 무신으로 우의정, 좌의정을 역임하였다. 또한 최초의 영중추원사가 되었으며 궤장을 하사받았다. 세종 치세에 이종무와 더불어 대마도를 정벌하였고, 북방의 여진족을 정벌하고 4군을 설치하여 압록강유역의 국경선을 확정하였다. 전국에 여러 읍성과 산성을 축성하여 축성대감으로 불렸다. 유년기 1376년(고려 우왕 2년)에 창원시 북면 내곡리 무릉촌에서 조선초 명장인 양장공 최운해의 장남.. 더보기
맹사성, 조선 초기 문화를 이룩하는데 크게 기여하다. 맹사성, 조선 초기 문화를 이룩하는데 크게 기여하다. 맹사성(孟思誠, 1360년 8월 28일/음력 7월 17일 ~ 1438년 10월 22일/음력 10월 4일)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정치인, 유학자이다. 본관은 신창이다. 자는 자명(自明), 호는 고불(古佛)·동포(東浦)이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고려 수문전제학 맹희도(孟希道)의 아들이며 고려말의 명장인 최영의 손녀 사위이다. 황희, 윤회, 권진과 함께 세종 대에 재상을 지냈으며 세종의 측근 중의 한 사람이었다. 생애 초반 맹사성은 충청남도 아산 온양 출신으로 모친을 여읜 뒤 어린 나이에 3년간 시묘를 하여 훗날 그의 이야기가 에 수록됐다. 1386년에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춘추관검열이 되었고, 그 뒤 여러 벼슬을 거쳐 1392년 이성계가 고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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