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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반민족행위

최창학, 삼성금광을 창설한 조선 최대의 광업자이며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다. 최창학, 삼성금광을 창설한 조선 최대의 광업자이며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다. 최창학(崔昌學, 1891년 ~ 1959년 10월 12일)은 일제 강점기 및 광복 후 대한민국의 광공업 분야 대표적 친일 기업인이다. 일제 강점기에 금광을 개발하여 부를 축척했고, 광복 뒤에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 주석을 지낸 김구에게 자신의 별장인 죽첨장(경교장)을 제공하기도 했다. 평안북도 구성군 출신이며, 본적은 평안북도 정주군 곽산면이다. 해방 이전 1923년부터 1929년까지 평안북도 구성군 소재 광산을 광업권으로 설정하면서 삼성금광(三成金鑛)을 창설한 뒤 일제 강점기 동안 조선인 최대의 광업자이며 천만장자로 불렸다. 일찍부터 사업가로 지냈고 평안북도 일대의 금광을 개발하여 거부가 되었다. 이후 구성 지역의 .. 더보기
을사오적, 을사조약 체결을 찬성했던 학부대신 을사오적, 을사조약 체결을 찬성했던 학부대신 을사오적(乙巳五賊)은 1905년 대한제국에서 을사조약의 체결을 찬성했던 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 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의 다섯 사람을 말한다. 당시 대신 중 수상격인 참정대신 한규설(韓圭卨)과 탁지부대신 민영기, 법부대신 이하영은 조약에 반대했고, 궁내부대신 이재 극은 조약 체결과 직접 관계가 없었다. 조약이 체결되자 이에 반대했던 한규설은 일본의 강압으로 물러가고, 조약에 조인한 외부대신 박제순이 참정대신이 되었다. 이하영은 초기의 반대 의견을 곧 뒤집은 뒤 조약 체결 과정에서 박제순보다 더 맹렬한 활약을 하였으나 처음에 반대한 사실 때문에 을사오적에서는 빠졌다. 을사오적은 매국노의 대명사로 이후 숱한 암살 위협에..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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