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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경회루 경복궁, 경회루 경회루는 큰 연회를 베풀거나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곳입니다. 높은 2층 누마루에 올라 산과 궁궐의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했고, 주위의 넓은 연못에서는 뱃놀이를 했던 곳입니다. 물 위에 비친 경회루의 기둥이 은은합니다. 2층 누마루의 중심 3칸은 천지인을, 그 바깥 12칸은 열두달을, 가장 바깥의 24기둥은 24절기를 의미하는 동양적 우주관을 나타냅니다. 마루 하나 기둥 하나에도 깊은 뜻이 담겨있어요. 그 뜻을 알고 보니 더 의미있게 다가옵니다. 연못의 넓이는 정전 뜰 만큼이나 넓습니다. 그 연못 안에 인공섬 세 개를 만들었습니다. 경회루는 그 인공섬 위에 지어진 누각이에요. 경회루에 육모지붕을 얹은 하향정이 눈에 띕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낚시를 즐기기 위해 지은 시설이라고 합니다. 화재를 .. 더보기
경복궁 수정전 경복궁 수정전 학문의 연구기관이자 세종대왕의 자문기관이었던 집현전은 지금의 수정전 자리에 있었습니다. 수정전은 고종 때 경복궁을 다시 지으면서 세운 건물입니다. 비록 사진이지만 눈을 가까이 하시고 한 번 세어 보세요. 수정전은 5단 월대위에 규모가 앞면 10칸, 옆면 4칸으로 총 40칸으로 경복궁 전각중 칸수가 가장 많습니다. 수정전의 월대는 임금의 출입이 빈번하여 관청으로서는 드물게 정면에 월대를 두었어요. 월대 앞면의 서쪽 계단 옆에는 보루각 표지석이 있습니다. 보루각은 자격루를 설치하고 표준시를 알리던 기관입니다. 자격루는 1434년 (세종16년) 장영실과 김빈이 2년여의 노력 끝에 완성한 물시계입니다. 자격루의 자동시보 장치가 시각을 알리면 이 신호를 받아 근정문, 광화문, 종루, 도성의 사대문에.. 더보기
경복궁 사정전, 사정문 경복궁 사정전, 사정문 근정전 후문이기도 한 사정문은 사정전의 규모에 맞추어 근정문에 비해 단출합니다. 사정문은 근정전 행사 때나 임금이 나들이 할 때 의장을 준비하므로 '차비문' 이라고도 합니다. 근정전의 뒤를 돌아 사정문을 지나면 사정전이 나옵니다. 사정문에 '사정' 은 '왕은 깊게 생각하여 옳고 그름을 따져 나랏일을 해야 한다' 라는 뜻입니다. 근정전이 왕과 신하의 공식적인 행사 장소라면, 사정전은 왕이 편히 앉아서 나랏일을 보는 집무실이지요. 이렇게 재위 기간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정무를 보는 곳을 편전이라고 합니다. 임금은 이른 시각에 이곳으로 출근을 해서 늦은 밤까지 수많은 업무를 처리했습니다. 왕의 공식적인 하루 일정은 아침 조회, 승지들로부터 국정 현안 보고를 받고 회의주재, 신료 접.. 더보기
경복궁 근정전에 숨어있는 보물들! 경복궁 근정전의 숨어있는 보물들! 모르면 그냥 지나치게 되는 근정전의 보물들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그럼, 하나 씩 찾아볼까요? 먼저 근정전의 지붕을 보세요. 조그만 인형들이 줄지어 있는 것이 보일겁니다. 그것을 '잡상' 이라고 합니다. 잡상은 그 건물에 사는 사람을 보호해 준다는 수호신입니다. 중국 소설 에 나오는 삼장법사와, 손오공, 사오정, 저팔계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무리들을 본떠 만든 흙 인형입니다. 잡상은 주술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어 홀수로 배치되었어요. 근정전 앞에 보면 세발 달린 솥 같이 생긴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왕권을 상징하는 '정' 이라고 합니다. 근정전에서 중요한 예식이 거행될 때, 왕이 정전 안의 어좌에 오르면 이곳에 향을 피웠다고 전해집니다. 조정 마당에 죽 늘어서 있는 돌들.. 더보기
조정의 출입구, 근정문! 법전인 근정전! 조정의 출입구, 근정문 근정문은 조정의 출입구이며 정치적인 활동이 시작되는 의미있는 장소입니다. 근정문은 조회, 사신접대, 즉위식, 가례, 교서 반포 등이 행하여지는 근정전으로 이어지는 문입니다. 또한, 국상중인 세자의 옥새 인수, 왕비와 세자의 책봉, 문과 전시, 새로 개발한 화포의 성능 확인 및 군사 훈련의 지휘등 실질적인 행사가 근정문 앞 마당에서 이루어 졌습니다. 근정문은 왕과 왕비, 세자 그리고 중국의 칙사만이 사용할 수 있었지요. 그럼, 신하들은 어느 문을 사용했을까요? 신하들은 근정문 좌우에 붙은 두 개의 협문을 사용했습니다. 근정문 동쪽에 있는 일화문은 문관이, 서쪽에 있는 월화문은 무관이 드나들었습니다. 왕도 되보고 무관과 무관이 되어서 근정문, 월화문, 일화문으로 들어가 보세요. 이왕이.. 더보기
[경복궁] 흥례문, 영제교, 유화문, 기별청 왕을 만나기 위해 지나는 문, 흥례문 흥례문은 경복궁으로 들어가는 두 번째 문입니다. 조선시대의 관리들은 여기서부터 왕을 만나기 위해 마음을 준비했지요. 세종 8년 홍례문이라 이름이 붙여졌는데 고종 때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흥례문으로 바뀌었습니다. 당시 청나라 건륭제의 이름이 '홍력' 이었으므로 '홍'을 피해 흥례문으로 바뀐것이지요. 흥례문 일곽은 1916년 일제가 조선 총독부 건물을 짓기 위하여 흥례문 권역을 모두 철거하였습니다. 광복후 '중앙청' 으로 한국전쟁 이후 정부청사로 쓰다가 1986년 부터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일반인에게 공개되었습니다.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철거하여 1997년 부터 복원공사에 들어가 2001년 10월 26일에 완공되었습니다. 일본이 조선총독부 건물을 세운 지 85년 만.. 더보기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 경복궁으로 들어가는 첫 문은 광화문입니다. 광화문은 경복궁의 남문이며 궁성의 정문입니다. 광화문은 '광천화일'의 준말로 광천은 밝은 세상, 화일은 안정된 시대를 뜻합니다. 즉, 밝고 안정된 정치를 이룩하여 태평성대를 열라는 염원이 담겨있습니다. 사직단과 종묘 이 문을 중심으로 서쪽에는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사직단이 있습니다. 동쪽에는 왕가의 사당, 종묘가 있습니다. 상상의 동물, 해치 해치는 나쁜 짓을 한 사람을 뿔로 받아버리거나 물어버린다는 상상의 동물입니다. 원래 관리들의 잘잘못을 가리는 사헌부를 상징해서 사헌부 건물 앞에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광화문 앞으로 옮겨졌다가 광화문 앞 도로를 넓히면서 지금의 자리에 있게 되었습니다. 해태라고도 불립니다. 서집자각과 동십자각 광화문을.. 더보기
조선의 으뜸 궁궐, 경복궁 조선의 으뜸 궁궐, 경복궁 경복궁은 왕의 권위와 정통성을 보이기 위해 태조4년에 세워진 조선시대 최초의 궁궐로 '만년토록 큰 복을 누려 번성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현재 세종대왕 동상이 있는 광화문 광장이 조선시대에는 행정과 정치의 중 심거리였던 육조거리였다. 경복궁은 조선 초 200여년간, 조선후기 고종 때 의 법궁이었다. 안타깝게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타버린 후 터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다가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이 원래보다 훨씬 더 크게 7000칸이 넘는 규모로 중건했다. 그 후로 고종 때에는 다시 법궁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1910년 조선이 일본에 의해 국권을 강탈당한후 로 일제는 조선의 역사의식과 민족의식을 말살시키기 위해 경복궁을 파괴하 기 시작했다. 특히, 191..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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