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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석, 의안대군, 1차 왕자의 난으로 폐위되고 17세로 암살되다. 이방석, 의안대군, 1차 왕자의 난으로 폐위되고 17세로 암살되다. 의안대군(宜安大君, 1382년 ~ 1398년 10월 6일(음력 8월 26일)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8왕자이다 그의 시호는 소도(昭悼)이며, 본명은 이방석(李芳碩)이다. 그는 태조의 왕비(제2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소생이다. 조선 최초로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인하여 폐위되고 향년 17세로 암살되었다. 세자 책봉 태조 1년(1392) 9월 7일(음력 8월 20일) 세자로 책봉되었다. 짧은 세자 기간 중 부인 현빈 류씨(賢嬪 柳氏)와 내시 이만(李萬)의 간통 사건이 있었으며 이로 인해 류씨와 이만은 처벌받고, 세자는 현빈 심씨(賢嬪 沈氏)를 새 부인으로 맞게 되었다. 태조 5년(1396) 9월 15일(음력 8월 13일)에.. 더보기
이방간, 회안대군, 정도전을 제거할 때 가담하여 정사공신 1등에 책록되다. 이방간, 회안대군, 정도전을 제거할 때 가담하여 정사공신 1등에 책록되다. 회안대군[懷安大君, 1364년 7월 2일 ~ 1421년 4월 10일(음력 3월 9일)]은 고려 말기의 문신이자 조선 초기의 왕자이다. 본관은 전주 이씨이며, 이름은 방간(芳幹), 시호(諡號)는 양희(良僖), 호(號)는 망우당(忘牛堂)이다. 이 력 조선 태조와 신의왕후(神懿王后) 안변 한씨(安邊韓氏) 사이의 넷째 아들로 함경도 함흥부 귀주동에서 태어났다. 첫째부인은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 여흥 민씨(驪興 閔氏) 이고, 둘째부인은 삼한국대부인 밀양 황씨(密陽黃氏)이며, 셋째부인은 금릉부부인(金陵府夫人) 김포 금씨(金浦琴氏)이다. 고려 말 관직에 올라 군기시소윤(軍器寺少尹)을 역임했고, 1392년(고려 공양왕 4년) 7월 태조 이성.. 더보기
조준, 경제육전, 1차 왕자의 난에 협조하여 일파를 제거하는데 앞장서다. 조준, 경제육전, 1차 왕자의 난에 협조하여 일파를 제거하는데 앞장서다. 조준(趙浚, 1346년 ∼ 1405년)은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의 문신(文臣), 시인(詩人), 무신(武臣), 정치가(政治家)이다. 본관은 평양(平壤), 자는 명중(明仲), 호는 우재(吁齋) 또는 송당(松堂)이다. 작위는 충의군(忠義君), 평양부원군(平壤府院君)이다.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조인규(趙仁規)의 증손이고 조연(趙璉)의 손자이며 판도판서를 지낸 조덕유(趙德裕)의 5남이고 태종의 둘째딸 경정공주의 부군 조대림(趙大臨)의 아버지이다. 생애 1371년(공민왕 21년) 음서로 문관 관직에 천거되었다가 1374년(공민왕 24년)에 함과에 급제, 공민왕 시대와 우왕 시대에 문관(文官)과 무관(武官) 관직을 두루 지내다가 1384년.. 더보기
원광, 세속오계, 진평왕의 명으로 걸사표를 지어 수나라에 출병을 요청하다. 원광, 세속오계, 진평왕의 명으로 걸사표를 지어 수나라에 출병을 요청하다. 원광(圓光, 542년 ~ 640년)은 신라 진평왕 시대의 유명한 승려이자 학자이다. 세속에서의 성은 박씨이다. 중국에서 불경을 연구하고 강의하면서 이름이 높았던 원광은 신라로 돌아 온 후 《여래장경사기(如來藏私記)》 · 《대방등여래장경소(大方等如來藏經疏)》 등을 지어 신라에 새로운 불교 지식을 전하였다. 한편, 교화활동에 힘써 국민도덕 및 사회윤리를 선양하는 일을 도모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세속오계(世俗五戒)의 제정이다. 진평왕 30년(608년)에는 왕명으로 《걸사표(乞師表)》를 지어 수나라에 출병을 요청했다. 생애 원광의 생애에 대해서는 13세기 초에 만들어진 《해동고승전》과 삼국유사에 간략히 나와 있다. 제자백가(諸子百家).. 더보기
맹사성, 조선 초기 문화를 이룩하는데 크게 기여하다. 맹사성, 조선 초기 문화를 이룩하는데 크게 기여하다. 맹사성(孟思誠, 1360년 8월 28일/음력 7월 17일 ~ 1438년 10월 22일/음력 10월 4일)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정치인, 유학자이다. 본관은 신창이다. 자는 자명(自明), 호는 고불(古佛)·동포(東浦)이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고려 수문전제학 맹희도(孟希道)의 아들이며 고려말의 명장인 최영의 손녀 사위이다. 황희, 윤회, 권진과 함께 세종 대에 재상을 지냈으며 세종의 측근 중의 한 사람이었다. 생애 초반 맹사성은 충청남도 아산 온양 출신으로 모친을 여읜 뒤 어린 나이에 3년간 시묘를 하여 훗날 그의 이야기가 에 수록됐다. 1386년에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춘추관검열이 되었고, 그 뒤 여러 벼슬을 거쳐 1392년 이성계가 고려.. 더보기
황희 정승, 논란과 의혹, 현명함과 냉철한 판단력으로 여러 단점에도 세종의 신임을 받다. 황희 정승, 논란과 의혹, 현명함과 냉철한 판단력으로 여러 단점에도 세종의 신임을 받다. 황희(黃喜, 1363년 3월 8일 (음력 2월 22일) ~ 1452년 2월 28일 (음력 2월 8일) )는 고려 말 조선 초기의 문신, 재상이다. 본관은 장수(長水). 초명은 수로(壽老), 자(字)는 구부(懼夫), 호는 방촌(厖村)이다. 고려조에 음서로 관직에 나갔다가 1389년(창왕 1년) 별장으로 과거에 급제했으나, 1392년(공양왕 3년) 고려 멸망 후 은거하였다. 그러나 동료들과 이성계의 부름으로 다시 관직에 올라 성균관학관으로 출사하여 조선에서 형조판서, 사헌부대사헌, 이조판서 등을 거쳐 영의정부사에 이르렀다. 시호는 익성(翼成)이다. 사후 1455년(세조 1년) 증 순충보조공신(純忠補祚功臣)에 책록되고, .. 더보기
고구려 태조왕, 한국의 군주 중 가장 오래 산 군주와 가장 오랫동안(93년) 군림한 군주로 기록되다. 고구려 태조왕, 한국의 군주 중 가장 오래 산 군주와 가장 오랫동안(93년) 군림한 군주로 기록되다. 태조대왕(太祖大王, 47년 ~ 165년)은 고구려의 제6대 국왕(재위 53년 ~ 146년)이다. 성은 고(高), 어릴 적 이름은 어수(於漱), 휘는 궁(宮)이며, 고구려를 강력한 중앙집권국가 수준으로 끌어 올린 왕으로서 그 업적이 나라를 세운 것에 버금간다고 하여 국조왕(國祖王)이라고도 불렸다. 119살에 붕어하여 한국의 군주 중 가장 오래 산 군주와 가장 오랫동안(93년) 군림한 군주로 기록되어 있다. 유리명왕(琉璃明王) 또는 대무신왕의 아들인 고추가(古鄒加) 재사(再思)의 아들로, 어머니인 태후(太后)는 이름은 미상이고 부여 사람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는 차대왕과 신대왕은 그의 이복 동생(서제).. 더보기
매소성 전투, 신라는 당군의 기병 수천을 전멸시켜 나당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키다. 매소성 전투, 신라는 당군의 기병 수천을 전멸시켜 나당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키다. 매소성 전투는 나당 전쟁 당시 675년 신라와 당나라가 매소성에서 벌인 전투로, 신라는 이 전투에서 당나라 20만 대군을 격파하여 그 간의 패배를 만회하고 나당 전쟁의 전세를 역전시켰다. 배경 신라가 당나라군이 주둔한 옛 백제, 고구려의 땅을 되찾기 위해 670년 일으킨 나당 전쟁은 672년 신라가 웅진성의 웅진 도독부를 축출하여 백제 땅을 되찾는 등 신라에게 점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에 675년 당나라의 장수 이근행은 20만 대군을 이끌고 신라 매소성 인근 지역을 공략하고 신라는 매소성 인근의 당나라군을 격파하기 위해 매소성을 총공격한다. 전투 과정 매소성의 당나라군을 격파하기 위해 신라 명장 김유신의 둘째 아들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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