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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윤, 간도관리사로 임명되어 간도 지역 조선인에 대한 행정 업무를 전담하다. 이범윤, 간도관리사로 임명되어 간도 지역 조선인에 대한 행정 업무를 전담하다. 이범윤(李範允, 1863년 12월 29일 ~ 1940년 10월 20일)은 대한제국의 간도관리사를 지낸 한국의 독립 운동가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무위대장을 지낸 조선 말기의 무관(武官) 이경하(李景夏)의 아들이고 구한말의 정치가 이범진(李範晋)의 아우이며 구한말의 외교관 이위종(李瑋鍾)의 숙부이다. 1863년 12월 29일 경기도 고양 출생이다. 구한 말 간도 문제로 청나라와의 갈등 끝에 변계경무서가 설치된 뒤 1899년 37세 때 음서 천거로 관료가 되어 1902년 간도시찰로 임명되기까지의 경력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간도로 파견되었고, 이듬해에는 간도관리사로 임명되어 간도 지역 조선인에 대한 행정 업.. 더보기
해부루왕, 해모수왕의 아들이며 금와왕의 아버지이다. 해부루왕, 해모수왕의 아들이며 금와왕의 아버지이다. 해부루(解夫婁, ? ~기원전 60년경는 부여의 국왕으로 해모수왕의 아들이며, 금와왕의 아버지이다. 생애 해모수의 아들로 부여의 왕위를 계승한 해부루는 재상 아란불(阿蘭弗)이 천제(天帝)의 계시를 받아 도읍을 옮길 것을 청하자, 그에 따라 동쪽 바닷가의 가섭원(迦葉原)이라는 곳으로 나라를 옮겨 이를 동부여라고 하였다. 해부루가 옮겨간 뒤에 원래 도읍지에는 동명제(東明帝)가 나라를 세웠다는 기록 이 있으며, 다른 전승에 따르면, 해부루의 아버지에 대한 기록은 없고, 옮겨간 뒤에 해모수가 하늘에서 내려와 왕이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부여는 해부루대에 동해의 바닷가에 있는 ‘가섭원(迦葉原)’으로 천도를 하고, 국호를 동부여라 하였.. 더보기
인천 상륙 작전, 서울 탈환으로 이어져 한국 전쟁 전반의 전세를 뒤집는 계기가 되다. 인천 상륙 작전, 서울 탈환으로 이어져 한국 전쟁 전반의 전세를 뒤집는 계기가 되다. 인천 상륙 작전(仁川上陸作戰, Battle of Incheon)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15일 UN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의 주도로 시작된 상륙작전이다. 이 작전에는 7만 5천여명의 병력과 261척의 해군 함정이 투입되었고, 대한민국의 서울 탈환으로 이어져 한국 전쟁 전반의 전세를 뒤집는 계기가 되었다. 작전 암호명은 크로마이트 작전(Operation Chromite)이었다. 배경 맥아더는 1950년 6월 29일, 전쟁이 발발한지 4일 지난 뒤에 한강 방어선을 시찰하며 조선 인민군의 후방에 상륙, 병참선을 차단하고 낙동강을 통해 반격에 들어간다는 기본 전략을 세웠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미국 해군은 인천항.. 더보기
기자조선, 시대에 따른 관점 기자조선, 시대에 따른 관점 기자조선(箕子朝鮮)은 고조선의 왕조 중 하나인 고대 국가이다. 조선시대에는 일반적으로 고조선을 셋으로 구분하였는데 기자가 세웠다고 하는 기자조선은 이 중 두 번째 시기에 해당된다. 명칭은 단군조선과 같은 ‘조선’이지만, 구분을 위해 후조선(後朝鮮) 또는 기씨조선(箕氏朝鮮)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기자조선은 실재 여부를 비롯하여 건국 과정, 성격에 대한 인식이 시대에 따라 논란이 있다. 현재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사학계 중 다수는 일반적으로 기자조선에 대한 고전적인 인식(기자동래설,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의 승계 등)을 부정하는 편이며, 그 유래와 실체에 대한 여러 주장이 있다. 기원전 1122년부터 기원전 195년 경까지 존속하였다고 한다. 개요 근대 역사학이 .. 더보기
김백일, 흥남 철수 때 에드워드 알몬드를 적극적으로 설득하여 피난민 수송을 성공시키다. 김백일, 흥남 철수 때 에드워드 알몬드를 적극적으로 설득하여 피난민 수송을 성공시키다. 김백일(金白一, 1917년 1월 30일 ~ 1951년 3월 28일)은 만주국과 대한민국의 군인이다. 만주 지린 성 옌지 출생이다. 만주군 상위로 재직 중 8.15 해방을 맞아 조선국방경비대에 입대하여 대한민국 국군 창설에 참여하였다. 창씨명은 가네자와 도시미나미(金澤俊南)이다. 초대 제병협동본부(대한민국 육군교육사령부와 대한민국 육군 보병학교의 전신)의 본부장이었으며 육군 소장 재직 중 6.25 전쟁에 참전하였다. 6.25 전쟁 중 1951년 3월 28일에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 인근의 상공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만주 지린 성 옌지에서 태어났으나 선대의 고향이 함경북도 명천군이었으므로 함경북도 출신으로도 간.. 더보기
자유시 참변, 소련군이 대한독립군단 소속 독립군들을 포위, 사살하다. 자유시 참변, 소련군이 대한독립군단 소속 독립군들을 포위, 사살하다. 자유시 참변(自由市慘變)은 1921년 6월 28일 러시아 스보보드니(이만, 알렉세예프스크, 자유시)에서 소련군이 대한독립군단 소속 독립군들을 포위, 사살한 사건이다. 다른 말로 자유시 사변(自由市事變), 흑하사변(黑河事變)으로도 불린다. 시대적 배경 당시 러시아는 러시아 내전 중이어서 시베리아에서는 볼셰비키를 중심으로 한 붉은 군대와 반혁명파를 중심으로 한 하얀 군대가 대립하고 있었다. 여기에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의 반란, 외국군의 무력간섭이 겹치면서 연해주는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일본군은 하얀 군대를 지원하고 있었다. 하얀 군대를 지원한다는 명목 아래 1918년 4월에 일본은 시베리아로 출병했고 하얀 군대를 지원하면서 반일 독립무장투.. 더보기
흥남 철수 작전, 무기를 전부 배에서 내리고 피난민 1만 4천여명을 태워 남쪽으로의 철수에 성공하다. 흥남 철수 작전, 무기를 전부 배에서 내리고 피난민 1만 4천여명을 태워 남쪽으로의 철수에 성공하다. 흥남 철수 작전(興南撤收作戰)은 중공군이 한국 전쟁에 개입하여 전세가 불리해지자, 1950년 12월 15일에서 12월 24일까지 열흘간 동부전선의 미국 10(X) 군단과 대한민국 1군단을 흥남항에서 피난민과 함께 선박편으로 안전하게 철수시킨 작전이다. 전개 앞서 대한민국 국군과 국제연합군이 38선을 넘기 시작하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미리 평양에서 철수하고 일부가 중공군 국가 안으로 들어가 중공군 도움을 요청하고 중공군 역시 한국전쟁에 개입을 할 때부터 시작했는데 중공군이 드디어 11월 27일 제2차 청천강 전투와 장진호 전투를 일으켜 국제 연합 사령부는 중공군의 공세로 인해서 전세가 불리해지자, 19.. 더보기
청산리 전투의 전개 과정, 중국 사람들의 항일 정신을 고무시키다. 청산리 전투의 전개 과정, 중국 사람들의 항일 정신을 고무시키다. 청산리 전투(靑山里 戰鬪) 또는 청산리 대첩(靑山里 大捷)은 1920년 10월 김좌진, 나중소(羅仲昭), 서일, 이범석 등이 지휘하는 북로군정서군(北路軍政署軍), 홍범도가 지휘하는 대한독립군, 대한신민단 예하 신민단 독립군 등 주축으로 활약한 만주 독립군 연합 부대가 만주 지린 성 화룡현 청산리 백운평(白雲坪)·천수평(泉水坪)·완루구(完樓溝) 등지의 10여 차례에 간도에 출병한 일본 제국 육군과 전투를 벌인 총칭이다. 삼둔자 전투와 봉오동 전투에서 연패한 일본군은 중국의 영토를 불법으로 침략했다는 비난을 만회하고자 훈춘 사건을 날조하고, 이를 계기로 만주에 대규모 부대를 투입하게 된다. 1920년 10월 21일부터 10월 26일까지 길림성..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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