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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훈련도감, 조선의 수도를 방어하기 위한 창설부대 훈련도감, 조선의 수도를 방어하기 위한 창설부대 훈련도감(訓鍊都監)은 조선 중기 임진왜란 이후에 조선의 수도를 방어하기 위해 창설된 부대이다. 5군영 중에서 가장 먼저 창설되어 그 중심을 차지하였다. 훈국(訓局)이라고도 한다. 지금의 수도방위사령부. 역사 임진왜란으로 조선의 전통적 진관체제(鎭管體制)가 무너지자 삼도도체찰사(三道都體察使) 류성룡의 건의에 따라 명나라 척계광(戚繼光)의 《기효신서(紀效新書)》에 나오는 〈절강병법(浙江兵法)〉에 의거해 임진왜란 당시인 1593년(선조 26년) 임시 기구로 설치되었다. 정병(精兵) 양성과 기민(飢民) 구제 임무를 맡아 오다가 1594년부터 수도 방위·국왕 호위 임무를 겸하여 종래 오위가 담당 하던 기능을 대신하였다. 이어서 5군영 체제가 갖추어지자 어영청·금위영.. 더보기
징비록, 임진뢔란의 공과를 평가한 반성의 기록 징비록 표지 징비록, 임진뢔란의 공과를 평가한 반성의 기록 징비록(懲毖錄)은 조선 선조 때 류성룡이 쓴 임진왜란에 대한 1592년(선조 25)에서 1598년(선조 31)까지 7년 동안의 일을 수기(手記)한 책으로, 저자가 벼슬에서 물러나 한거(閑居)할 때 저술하였고 1604년(선조 37년) 저술을 마쳤다. 대한민국의 국보 제132호로 지정되어 있다. 저술의 동기 징비란 《시경(詩經)》의 소비편(小毖篇)의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豫其懲而毖後患)”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징비록은 임진왜란 전란사로서,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7년에 걸친 전란의 원인, 전황 등을 기록한 책이다. 『징비록』의 첫 장에서 류성룡은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고 비옥한 강토를 피폐하게 만든 참혹했던 전화를 회.. 더보기
한산도 대첩, 조선 수군 일본수군을 학익진으로 크게 무찌르다! 한산도 대첩, 조선 수군 일본수군을 학익진으로 크게 무찌르다! 한산도 전투(閑山島 戰鬪) 또는 한산도 대첩(閑山島大捷) 1592년 8월 14일(선조 25년 음력 7월 8일) 한산도 앞바다에서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을 크게 무찌른 해전으로, 이 전투에서 육전에서 사용하던 포위 섬멸 전술 형태인 학익진을 처음으로 해전에서 펼쳤다. 학익진 배경 1592년(선조 25) 7월 8일(음력 5월 29일)에 2차 출동한 조선 수군의 전라좌수사 이순신의 함대는 7월 18일(음력 6월 10일)까지 사천, 당포, 당항포, 율포 등에서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나, 조선은 일본 육군에 계속 패전하고 있었다. 일본 수군은 일본 육군에 호응하여 가덕도와 거제도 부근에서 10여 척에서 30여 척까지 함대를 이루어 서진하고 있었다. .. 더보기
광해군, 실리외교를 펼친 광해군 현대에 와서 재조명되다. 광해군, 실리외교를 펼친 광해군 현대에 와서 재조명되다. 광해군(光海君, 1575년 6월 4일 (음력 4월 26일) ~ 1641년 8월 7일 (음력 7월 1일)) 조선의 제15대 임금이다. 성은 이(李), 휘는 혼(琿),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선조와 공빈 김씨의 둘째 아들이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세자로 책봉되었고, 함경도와 전라도 등지에서 군수품과 의병을 직접 모집하고 군량미를 모으는 데에도 힘썼다. 임진왜란 동안 세자의 몸으로 부왕을 돕고 전쟁 승리에 적지 않은 공을 세웠으나, 부왕의 인정은커녕 견제와 냉대를 당해야 했다. 임진왜란 이후 우여곡절 끝에 1608년 왕위에 올랐다. 임진왜란의 뒷수습과 민생 안정을 위해 남인 이원익을 영의정에 등용하는 듯 여러 노력을 기울였으며,.. 더보기
'명량',역사를 바꾼 위대한 전쟁!" 전군 출정하라" 명량, "전군 출정하라!" '명량'은 개봉전 부터 기대를 많이 했던 작품입니다. '명량'의 도입부분은 파도에 휩쓸려 빨려들어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습니다. '명량' 전반부는 조금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명량해전 장면이 언제 쯤 나오나' 기다리게 하고, 기대감이 더 커지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말 보다는 행동으로 백성과 부하들의 마음을 하나로 만드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은 감동적입니다. 드디어 해전 장면으로 전환되는 "전군 출정하라"는 명령 한마디에서 비장함이 느껴져 숨을 가다듬게 됩니다. 노를 젓는 백성들의 피나는 손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밀려오는 두려움을 삼키며 적을 맞는 장수와 병사들에게서 모두가 하나로 연결된 끈끈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최민식의 무게있는 연기와 눈빛에서 믿음직스럽고.. 더보기
임진왜란, 전쟁발발의 배경 임진왜란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서 우리 나라에 침입한 일본과의 싸움. 1차 침입이 임진년에 일어났으므로 ‘임진왜란’이라 부르며, 2차 침입이 정유년에 있었으므로 ‘정유재란’이라 한다. 하지만 임진왜란 하면 일반적으로 정유재란까지 포함시켜 말한다. 이 왜란을 일본에서는 ‘분로쿠(文祿)?케이초(慶長)의 역(役)’이라 하고, 중국에서는 ‘만력(萬曆)의 역(役)’으로부른다. 전쟁발발의 배경 조선이 임진왜란을 당하여 전쟁 초기 이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국력이 쇠약해진 것왜란이 일어난 선조대에 이르러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이미 훨씬 이전부터 중쇠(中衰)의 기운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정치적으로는 연산군 이후 명종대에 이르는 4대 사화(四大士禍)와 훈구(勳舊)와사림(士林) 세력간.. 더보기
임진왜란 전투기록 임진왜란 전투기록 출처 : 충무공 이순신 더보기
난중일기, 친필일기 난중일기 난중일기, 친필일기 『난중일기』는 이순신(1545~1598) 해군사령관이 1592년 1월1일 부터 1598면 11월17일 까지 군중 생활을 직접 기록한 친필일기입니다. 임진왜란 발발(1592년 1월) 이후부터 이순신이 1598년 11월,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 직전까지 7년의 기간을 망라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난중일기』는 원래 임진일기(1592년), 계사일기(1593년), 갑오일기(1594년), 을미일기(1595년), 병신일기(1596년), 정유일기(1597년), 속정유일기(1597년), 무술일기(1598년)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1595년의 을미일기를 뺀 총7책이 보존되어 전해오고 있습니다. 일기의 역사적 배경이었던 임진왜란은 외형적으로는 조선과 일본 사이에 치러진 전쟁이었지만 일본의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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