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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황윤길, 임진왜란을 정확히 예견하다. 황윤길, 임진왜란을 정확히 예견하다. 황윤길(黃允吉, 1536년 ~ 몰년 미상)은 조선 중기의 문신, 외교관, 정치인이다. 자는 길재, 호는 우송당, 본관은 장수이다. 당색으로는 서인이다. 1590년 선조 때 통신사 정사로 일본에 다녀와서 변란의 가능성을 보고했지만, 채택되지 못했다. 임진왜란을 정확히 예견하여 유명하여졌다. 생애 황희의 5세손으로 그의 가계는 훈구파였지만 그는 사림파에 가담하여 출사하였다. 그는 일찍부터 율곡 이이, 우계 성혼, 송강 정철 등과 가까이 지냈다. 명종 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선조 때 통신정사로 일본에 다녀왔다. 조선통신사 각처에서 활약하던 일본의 무사들을 정리하고 중앙집권화를 이루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선조가 일본의 정세를 파악하고 정탐 을 위해 사람을 보냈는데, 조선에서.. 더보기
김성일, 잘못된 판단으로 임진왜란 발발 이후 큰 비판을 받다. 김성일, 잘못된 판단으로 임진왜란 발발 이후 큰 비판을 받다. 김성일 (金誠一, 1538년~1593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본관은 의성, 호는 학봉(鶴峰), 자는 사순(士純)이다. 퇴계 이황의 제자. 시호는 문충공 서애 류성룡과 함께 퇴계의 학문을 이어받은 수제자로 임진왜란 때 초유사로 순절하였다. 1590년 일본에 통신사 부사로 갔다와서 일본이 침략을 하지않을 것이라는 잘못된 판단을 하여 보고함으로써 임진왜란 발발 이후 큰 비판을 받았다. 안동에 자리한 학봉종택은 안동의 대표적인 양반가옥의 전형으로 유명하다. 어린 시절 1562년 승려 보우(普雨)의 말에 따라 문정왕후가 희릉(禧陵)을 옮기려 하자, 유생의 신분으로 이에 반대하는 상소문을 지었다. 1564년 진사시, 1567년 대과에 합격.. 더보기
곽재우, 붉은 갑옷을 입고 용맹하게 왜군을 무찌른 홍의장군(1) 곽재우, 붉은 갑옷을 입고 용맹하게 왜군을 무찌른 홍의장군 곽재우(郭再祐, 1552년 8월 28일 ~ 1617년 4월 10일)는 조선 중기의 무신, 정치인, 군인으로 임진왜란에서 크게 활약한 의병장이다. 34세 때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문장의 글귀가 왕의 귀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벼슬에는 오르지 못하고, 40세가 넘도록 고향에서 학문과 낚시질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1592년(선조 25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관군이 일본군에게 전멸당하자, 당시 고향인 경남 의령에서 스스로 의병을 조직, 붉은 비단으로 된 갑옷을 입고 활동하여 천강홍의장군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그의 용맹성에 놀란 왜병들은 곽재우의 이름만 들어도 두려워했다 한다. 여러번 승리한 공로로 찰방, 조방장 등을 지낸뒤 병마절도사를 역임했다. .. 더보기
권율, 행주대첩, 왜군을 성공적으로 격퇴하다.(1) 권율, 행주대첩, 왜군을 성공적으로 격퇴하다. 권율(權慄, 1537년 ~ 1599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 군인, 정치인이다. 본관은 안동, 자는 언신(彦愼), 호는 만취당(晩翠堂)·모악(暮嶽), 시호는 충장(忠莊)이다. 영의정 권철의 막내 아들이자 이항복의 장인이다. 임진왜란의 조선군 장수로, 왜란 당시 조선군 총사령관인 도원수로서 왜군의 침략을 성공적으로 막아내는데 기여했으며 임진왜란 3대 대첩 가운데 하나인 행주대첩을 이끈 장군으로 특히 잘 알려져 있다. 사후 선무공신 1등에 녹훈되었다. 임진왜란 이전 1537년 후일 영의정을 지내는 권철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가계는 상당히 유복한 가정이었다. 그는 나이가 들어도 관직에 나아갈 생각은 않고 오로지 공부에만 매진했다. 가족들의 권고에 뒤늦게 그가 .. 더보기
이덕형, 이항복과의 평생에 걸친 우정, 오성과 한음 이덕형, 이항복과의 평생에 걸친 우정, 오성과 한음 이덕형(李德馨, 1561년~1613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 정치인으로 동인(東人)과 남인(南人)의 일원이다. 같은 동인이었다가 북인이 된 이이첨은 그와 10촌 형제간이었다. 본관은 광주, 자는 명보(明甫), 호는 한음(漢陰)·쌍송(雙松)·포옹산인(抱雍散人)이다.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이민성(李民聖)의 아들이다. 절친한 친구 이항복과의 평생에 걸친 우정은 생전부터 오성과 한음으로 회자화되었다. 한성부 출신이다. 출생과 유년기 이덕형은 1561년 한성 성명방(誠明坊 : 지금의 남대문과 필동의 사이)에서 아버지 이민성(李民聖)과 영의정 유전(柳전)의 누이 동생인 어머니 유씨(柳氏) 사이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두뇌가 영특하여 소년 시절에 벌써 .. 더보기
선조, 국가의 큰 재앙을 스스로 자초한 무능한 왕 선조의 목릉 선조, 국가의 큰 재앙을 스스로 자초한 무능한 왕 선조(宣祖, 1552년 11월 26일 (음력 11월 11일) ~ 1608년 3월 16일 (음력 2월 1일)는 조선의 제14대 임금(재위 1567년~1608년)이다. 성은 이(李), 휘는 연(昖),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첫 작위는 하성군이었다. 중종의 서손이며 조선 명종의 이복 조카이고,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이초(李岹)와 하동부대부인(河東府大夫人) 정씨 (鄭氏)의 아들로서, 비는 의인왕후(懿仁王后) 박씨, 계비는 인목왕후(仁穆王后) 김씨이다. 조선 최초의 서자 출신 임금이며, 최초의 방계 혈통의 임금이기도 하다. 서자 출신이라는 점과 방계 승통이라는 점이 열등감으로 작용하여 오랫동안 그를 괴롭혔다. 개인적으로는 주자학에 조예가 깊었고, 시.. 더보기
신립,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펼치다. 신립,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펼치다. 신립(申砬, 1546년 10월 23일 ~ 1592년 4월)은 조선 시대의 무신이자 장수로 무과에 급제하여 오위도총부와 진주판관, 임진 왜란 첫 해에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펼치고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한 장군이다. 신숭겸의 후손으로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자는 입지(立之)라 했다.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생애 신립은 명종 원년(1546년) 10월 23일 평산 신씨 화국과 부인 파평 윤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시조 신숭겸은 고려 왕건의 개국공신으로 그 뒤 조선 전기의 문신 신개는 조선 건국 이후 좌의정을 지내고 문희공의 시호를 받았다. 신개는 신립의 5대조였다. 고조 신자준은 음보로 기용되어 세종 27년(1445) 장령이 되고, 세조 원년(1455) 판종부시사로 .. 더보기
유성룡, 청렴하고 정직한 삶을 살다간 조선의 명재상 (1) 유성룡의 편지 서신 유성룡, 청렴하고 정직한 삶을 살다간 조선의 명재상 류성룡(柳成龍, 1542년 11월 7일(음력 10월 1일) ~ 1607년 5월 31일(음력 5월 6일))(류성룡)은 조선 중기의 관료, 인문학자, 의학자, 저술가이다.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이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경상도 의성의 외가에서 태어났으며, 간성군수 유작(柳綽)의 손자이며, 황해도 관찰사 유중영(柳仲郢)의 차남이다. 이황의 문하에서 조목(趙穆)·김성일과 동문 수학하였으며 성리학에 정통하였다. 과거를 통해 관료로 등용되어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정여립의 난과 기축옥사를 계기로 강경파인 이산해, 정인홍 등과 결별하고 남인을 형성하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직전 군관인 이순신과 원균..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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