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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

명종, 자신의 세력기반을 지니지 못한 채 문정왕후와 윤원형의 전횡 속에서 왕위를 지키다. 명종, 자신의 세력기반을 지니지 못한 채 문정왕후와 윤원형의 전횡 속에서 왕위를 지키다. 명종(明宗, 1534년 7월 3일 (음력 5월 22일)~ 1567년 8월 2일 (음력 6월 28일))은 조선의 제13대 임금이다. 성은 이(李), 휘는 환(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대양(對陽). 사후 시호는 명종공헌헌의소문광숙경효대왕(明宗恭憲獻毅昭文光肅敬孝大王)이며 중종의 차남으로 문정왕후의 유일한 친아들이다. 이복 형 인종(부왕 중종의 적장자)이 후사 없이 붕어하기 3일 전 인종의 선위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이후로 모후인 문정왕후의 섭정, 친정 이후에는 외척인 윤원형, 윤원로, 윤춘년, 윤백원, 이량, 심연원, 심통원 등에 의해 정사가 좌지우지되면서 혼란을 겪었다. 아들 순회세자를 일찍 잃고 이복.. 더보기
효혜공주, 중종의 장녀, 산후병으로 향년 21세로 사망하다. 효혜공주, 중종의 장녀, 산후병으로 향년 21세로 사망하다. 효혜공주(孝惠公主, 1511년 6월 13일(음력 5월 18일) ~ 1531년 5월 6일(음력 4월 20일))는 조선 중기의 공주이다. 제11대 왕 중종의 장녀로,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 윤씨(章敬王后 尹氏) 소생이다. 제12대 왕 인종의 친누나이자 김안로의 며느리이다. 본관은 전주, 이름은 옥하(玉荷)이다. 생전 부친인 중종의 총애를 받았다고 전해지며, 김안로가 복관하는 데에 구실을 만들어준 존재이다. 생애 1511년(중종 6) 6월 13일(음력 5월 18일) 탄생하였다. 1515년(중종 10) 3월 16일(음력 3월 2일) 5세 때 모후인 장경왕후를 여의었다. 어머니를 잃은 후 성종의 후궁인 남씨와 이모 윤씨에 의해 양육되었다. 1520년(중종.. 더보기
남이 장군, 역모의 누명을 쓰고 처형되다. 남이 장군, 역모의 누명을 쓰고 처형되다. 남이(南怡, 1441년 ~ 1468년 10월 27일)는 조선시대 전기의 장군, 정치인, 시인, 척신이다. 할아버지는 의산군(宜山君) 남휘(南暉)이고, 할머니는 태종과 원경왕후의 넷째 딸인 정선공주(貞善公主) 이며, 부인은 좌의정 권람(權擥)의 딸이다. 본관은 의령이다. 무예에 능하였으며 세조의 총애를 받아 20대의 나이에 병조판서에 이르렀으나 해임당한 것에 불만을 품던 중 그가 지은 시조 한 수를 문제삼은 유자광(柳子光)과 한명회(韓明澮), 신숙주(申叔舟) 등의 공격을 받고 처형되었다. 순조 때인 1818년(순조 18년) 후손 우의정 남공철(南公轍) 등의 상소로 복권되었다.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초기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영의정부사를 지낸 남재(南在)의 현손으.. 더보기
남곤, 조광조 일파를 숙청하는데 가담, 사림으로 부터 변절자로 몰리다. 남곤, 조광조 일파를 숙청하는데 가담, 사림으로 부터 변절자로 몰리다. 남곤(南袞, 1471년 ~ 1527년 3월 10일)은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 유학자이며 정치인, 교육자, 작가, 시인이다. 초기 사림파 정치인이었으며 성리학의 지식에 해박하였으며, 사장학과 경서 해석에도 재주가 있었다. 자(字)는 사화(士華), 호는 지정(止亭)·지족당(知足堂)·지족(知足), 시호는 문경(文敬), 본관은 의령(宜寧)이다. 사림파 출신 인사 중 김전 등과 함께 심정·홍경주 등이 기묘사화를 일으키는 것을 묵인, 동조하였다. 1494년(성종 25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부제학, 이조참판, 사헌부대사헌, 이조판서, 홍문관대제학, 의정부좌찬성과 우찬성, 예조판서를 거쳐 기묘사화 이후 대광보국숭록대부로 승진하여 의정부좌의.. 더보기
윤임, 인종의 삼촌, 명종조 권신들의 권력농단에 대한 책임 논란에 휩싸이다. 윤임, 인종의 삼촌, 명종조 권신들의 권력농단에 대한 책임 논란에 휩싸이다. 윤임(尹任, 1487년 ~ 1545년 8월 30일) 조선시대 중기의 무신이자 인척. 자는 임지(任之), 본관은 파평이다. 영돈녕부사 파원부원군(坡原府院君) 윤여필의 아들이자 중종의 비인 장경왕후의 오빠로, 1506년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중종을 옹립하는데 기여하였다. 1512년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은 숭정대부의정부좌찬성 겸 판의금부사, 판돈녕부사 겸 오위도총부 도총관에 이르렀다. 누이 장경왕후 사후에 자신의 집안인 파평 윤씨에서 문정왕후를 새 왕비로 추천하였는데, 이후 윤원형 일가와는 앙숙이 됐다. 이후 대윤(大尹)의 거두로 윤원형, 윤원로 등 소윤(小尹) 일파와 대립하였다. 윤임은 인종의 외삼촌이었고 윤원형은 명종의 외삼촌이었는.. 더보기
정현왕후, 자순대비, 중종을 왕으로 세우는 것을 승낙하다. 정현왕후, 자순대비, 중종을 왕으로 세우는 것을 승낙하다. 정현왕후 윤씨(貞顯王后 尹氏, 1462년 7월 21일 (음력 6월 25일)~1530년 9월 13일 (음력 8월 22일)는 조선 성종(成宗)의 둘째계비이다. 시호는 자순화혜소의흠숙정현왕후(慈順和惠昭懿欽淑貞顯王后)이다. 자순대비(慈順大妃)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영원부원군 평정공 윤호(鈴原府院君 平靖公 尹壕)와 연안부부인 전씨(延安府夫人 田氏)의 딸로,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중종반정 시 중종을 왕으로 세우는 것을 승낙한 인물로 유명하다. 능은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선정릉 내에 위치한 선릉(宣陵)으로, 남편 성종과 동원이강의 형태로 같이 묻혀 있다. 1462년 7월 21일 (음력 6월 25일)에 태어나 1530년 9월 13일 (음력 8월 22일).. 더보기
성희안, 중종반정을 일으켜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중종을 옹립하였다 성희안, 중종반정을 일으켜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중종을 옹립하였다. 성희안(成希顔, 1461년 1월 ~ 1513년 7월)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 작가, 외교관으로 자는 우옹(愚翁), 호는 인재(仁齋), 시호는 충정, 본관은 창녕이다. 점필재 김종직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1485년(성종 16)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관직에 올랐으나 연산군을 풍자하는 시를 썼다가 관직이 부사용으로 강등당한다. 이후 중종 반정에 적극 참여하여 성사시켰고, 주요 반정 공신의 한사람이었다. 반정 후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다. 김종직의 문인이다. 생애 초반 돈령부판관 성찬(成瓚)과 그 부인 전주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외할아버지는 덕천군 이후생(李厚生)이다. 일찍이 점필재 김종직을 찾아가 그의 문하에서 사사하였다.. 더보기
장경왕후, 단경왕후가 폐위되자 정비에 책봉되다. 장경왕후, 단경왕후가 폐위되자 정비에 책봉되다. 장경왕후 윤씨(章敬王后 尹氏, 1491년 8월 10일(음력 7월 6일) ~ 1515년 3월 16일(음력 3월 2일))는 조선 중종의 계비이다. 시호는 숙신명혜선소의숙장경왕후(淑愼明惠宣昭懿淑章敬王后)이다. 파원부원군 정헌공 윤여필(坡原府院君 靖憲公 尹汝弼)과 순천부부인 박씨(順天府夫人 朴氏)의 딸로,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그가 사망한 뒤 담양 부사 박상(朴祥)과 순천 군수 김정(金淨)이 폐비 신씨의 복위를 요청하는 상소를 올렸고, 이로 인해 조선 정부는 대간이 세 번이나 전원 교체되는 등 일대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능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서삼릉 내에 위치한 희릉(禧陵)이다. 생모가 일찍 죽어, 어렸을 때에는 이모이자 월산대군의 부인인 승평부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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