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왕 신라 39대왕과 애장왕 신라 40대왕
소성왕
소성왕(昭聖王, ? ~ 800년, 재위: 798년 ~ 800년)은 신라의 제39대 왕이다. 성은 김씨(金氏)이고, 이름은 준옹(俊邕)이다. 소성왕(昭成王)이라고도 한다. 원성왕의 장손이다. 아버지는 원성왕의 장남인 인겸(仁謙, 惠忠太子)이며, 어머니는 성목태후(聖穆太后) 김씨이다.
생애
아버지가 태자로 죽었으므로 궁중에서 자라서 789년에 당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그 후 대아찬이 되고 시중 등을 거쳐 이듬해 병부령이 되었다. 795년 태자로 책봉되어 왕위에 올랐다. 당의 덕종으로부터 개부의동삼사 검교대위 신라왕에 책봉되었다. 재위 2년 만에 죽어 이후로 신라 왕위 쟁탈전의 원인이 되었다.
애장왕
애장왕(哀莊王, 788년 ~ 809년, 재위: 800년 ~ 809년은 신라의 제40대 왕이다. 성은 김씨(金氏)이고 이름은 청명(淸明)이고, 나중에 중희(重熙)로 이름을 바꾸었다. 800년부터 809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숙부 김언승이 섭정하였다.
생애
800년 즉위하였을 때, 13세에 불과하였으므로 작은아버지인 병부령(兵部令) 김언승의 섭정을 받았다. 805년에 친정을 시작하여 공식(公式) 20여조를 반포하였고, 808년에 12도에 사신을 파견하여 군(郡), 읍(邑)의 경계를 정하였다. 이것은 애장왕의 중앙과 지방제도에 대한 개혁조치라 할 수 있다. 즉위한 후, 어머니 계화(桂花)를 대왕후(大王后)에, 부인 박씨(朴氏, 또는 정(貞)씨/계월왕후(契月王后)라고 하나 근거 없음)를 왕비에 책봉하였다.
청주(菁州:지금의 진주)의 노거현(老居縣)을 학생녹읍(學生祿邑)으로 설정하였다.
애장왕은 809년 숙북 김언승과 육촌 동생 김제옹의 반란때, 대궐에서 동생 체명과 함께 살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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